[캐롤]을 보고 쓰다.
보편적 사랑과 특별한 사랑은 무엇일까. 그건 구분 가능한 일일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은 나라는 개인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사실 다른 이들이 연애 하며 느끼는 희노애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기기도 하다. 우리는 이를 로맨스물에 적용해볼 수 있다. 로맨스물이(사랑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필요하다. 로맨스의 당사자가 있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처한 서로 다른 환경과 성격이 있다. 그리고 로맨스의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 혹은 세상과 다양한 종류의 충돌이 일어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로맨스가 성립한다. 요약하자면 당사자 / 캐릭터 / 갈등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가장 좋았던 로맨스 작품이었던 <봄날은 간다>를 예로 들어보자. 여기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라는 두 인물이 있다. 상우는 보기 드물게 순진한 싱글이고 은수는 이혼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싱글이다. 이 각기 다른 모습이 조화를 이루거나 갈등을 일으키며 두 사람의 연애를 열었다가(라면 먹고 갈래요?) 다시 닫는다(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은수와 상우가 느꼈던 사랑의 감정은 지극히 보편적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은수와 상우가 가진 특별성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냥 메신져에서 흘러가는 친구의 계속되는 사랑 푸념에 지나지 않았을 게다.
근데 그건 꼭 영화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그렇지 않은가. 특이성이 부딪힐 때 사랑이 발생한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가능성. 사랑을 느낄때의 열정과 긍정,부정적인 감정과 모습들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을 진짜 사랑으로 만드는 것은 상대와 나의 특이성이 부딪힐때만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캐롤>을 봐서이다. 위에 말한 점 때문에 이 영화는 분명 보편적 사랑의 이야기이다. 아무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어느 한 평론가의 이야기들이 문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캐롤>이라는 영화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선의가 무엇인지는 이해한다. 아직도 호모포빅한 이 세상에서 그들 또한 사람이니 그들의 사랑을 이상하게 보지 말라는 의견의 '선의'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랑의 시민권이 꼭 '그들 또한 인간이었다'라는 언술을 달아야만 획득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화면 속에서 보면서 그들이 사랑하고 있음을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이 헤어졌을 때 얼마나 가슴아팠을 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든 건 그들이 레즈비언이었기 때문이며, 캐롤이 딸을 사랑하는 기혼자였기 때문이며, 테레즈가 예술을 지망하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이성을 캐롤과 테레즈가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다시 눈빛을 마주치며 만날 수 있었다. 과정이 없이 결과가 없듯, 보편성은 특이성을 타고 와야 우리에게 실현된다. 특이성을 말하지 않으면 보편성도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특이성이 없다면 '그들은 사랑했습니다' 아니면 '그들은 헤어졌습니다'로 끝날 사랑 이야기를 굳이 돈 주고 봐줄 이유가 뭐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