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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는 이유

궁상맞은 프라푸치노 한 잔

왜 아직도 스타벅스일까

by 줄타기인생

스타벅스를 처음 안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난다. 대략 2003-2005 어느쯤이다. 처음부터 스타벅스를 좋아했다. 한창 스벅에서 커피 사먹는 걸 흉보는 분위기가 있을때도 스벅을 사먹는 일은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참 별걸 다) 열심히 사먹었다. 그게 내 나름의 작은 자존감이었단 사실을 이젠 안다.


2020년엔 그 잡음들은 다 사라졌다. 대신 어딜 가나 스타벅스와 카페가 즐비하다. 스벅의 시대가 된 지 꽤 지났다. 스타벅스는 단기 공간 임대라느니 균일한 브랜드 경험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슬며시 표준적인 정의가 됐다. 이제는 커피가 4천원 6천원 하는 건 예전보다 당연한 일이 됐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일이 부정적 뉘앙스를 점점 벗어던지면서 스벅을 가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됐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래도 스벅을...’이라며 이것저것 시켜보고 사먹고 컵을 사고 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놓인 책상 위의 스벅 굿즈 서너개를 보고서는 깨닫는 것이다. 아이고. 나도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긴 하구나 하고.


스벅 때문에 한국인 표준 커피는 구수하고 쌉쌀한 커피가 됐고. 이 때문에 개성있는 카페들이 팬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스벅에서 던킨커피나 막판의 카페베네 같은 커피를 내놔도 나는 스벅을 가게 될 것이다. 눈치 볼 일 없이 책을 보거나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카페를 그렇게 오래 쓰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느 지점이나 양질의 경험을 제공해주기 때문일까? 이도 당연히 있겠다. 그러나 결국 개인화 된 무엇이 특정 제품을 계속 찾게 만드는 고리가 된다.


나에게는 그 고리가 어쩌면 궁상일지도. 이제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스벅에 가는 건 여전히 작은 사치고 나를 챙기는 의식으로 남아있다. 일요일 낮에 잠깐 나갔다 사먹는 라떼. 여름에 마시는 쿨라임 피지오와 프라프치노. 단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겨울 시즌에 괜히 한번은 사먹는 토피넛 라떼. 수없이 마셨을 오늘의 커피와 아메리카노....여전히 스벅에서 음료를 마실때는 재수생때 없는 돈에 나를 챙기는 사치를 부린 기분이 든다. 궁상맞은 이 감각은 스벅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인생에는 그런 식으로 애착이 생기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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