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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y 30. 2021

콘텐츠 업계에서 마케터의 역할이란

다큐멘터리 마케팅 경험 회고.

*콘텐츠 업계 재직 시기가 2012-2018년으로 지금 업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너그러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은 커머스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첫 직장에서는 꽤 오랜 시간 콘텐츠 '마케팅'을 했다. 뒤에 쉼표를 붙인 까닭은 이러하다. '콘텐츠' 마케팅이 있고 콘텐츠 '마케팅'이 있다. 전자는 팔아야 하는 상품을 콘텐츠를 통해 마케팅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콘텐츠 상품(드라마, 영화, 웹툰 etc..)을 마케팅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가지를 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글에서는 후자의 의미다.


 콘텐츠 사업은 실물 상품을 다루는 커머스 사업과는 몇가지 차이가 있다. 실무자로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콘텐츠 제작이나 사업기획에 참여하지 않는 한 마케팅의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다. 콘텐츠 상품의 핵심 요소들 - 비주얼 / 스토리 / 출연진 - 은 모두 마케팅 요소 그 자체인데, 결정권은 제작진에게 있다. 이에 비해서 커머스 상품은 마케팅의 자유도가 어느정도 있는 편.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전자가 후자보다 일이 복잡하지 않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마케팅'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 궁금하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 사업기획에 더 가깝겠지.

 한번에 다루는 커버리지나 파급력의 단위가 크고 어떻게 보면 돈보다 더 얻어내기 어려운 '애정'을 끌어내야 한다는 점, 웹 기반으로 대세가 넘어오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제한된 채널과 소재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점. 연중 수많은 콘텐츠를 다뤄야 한다는 점. 성공 시의 화제성과 높은 장악력. 통상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채널 내에서 홍보/마케팅이 이뤄지기 때문에 (ex. 방송국) 유리한 조건에서 노출을 진행할 수 있는 점 등은 콘텐츠 마케팅을 매력적인 분야로 만들기 충분하다.


 물론 이것은 콘텐츠를 마케팅 하는 경우만 둔 것이다. 조직과 회사에 따라서는 사업기획과 부가사업(커머스를 포함한)까지 마케팅이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또 요구되는데, 이렇게 되면 필요한 역량은 훨씬 넓어진다. 오히려 정말 사업에 오리엔티드된 마케팅이 가능한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찌됐건, 콘텐츠건 상품이건 무언가를 알리고 지불 받아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마케터가 가장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상품처럼 배너광고 등의 비중이 높을 수는 없다. 콘텐츠를 가장 잘 알리는 것은 결국 또 내러티브가 있는 콘텐츠일수밖에.

 예를 들면 예고편. 사전 선공개 영상, 특전인사, 짧은 프리퀄 웹툰 등이 있을 수 있겠다. 물론 제작발표회를 포함한 오프라인 이벤트들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서 린하게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2016년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마케팅을 맡았을 당시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예능이나 드라마보다 더 타깃이 니치한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결국은 콘텐츠로 콘텐츠를 알리는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대안가족들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4부작 다큐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안하고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기획의도가 있었다. 물론 여러 한계로 보다 진보적이고 매력적인 주장들을 담지는 못했지만.

쿠르츠게작트

  또 그런 기획을 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딱히 셀럽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용적인 측면 말고는 특이점이 없으니...어떤 마케팅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웹 상에서 유행하던 쿠르츠게작트라는 숏폼 형식의 정보성 콘텐츠를 보게 됐다. 순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보기 편한 숏폼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자. 그리고 우리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 이니 그러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를 만들자.



 예를 들면 IBM 창립자가 컴퓨터 따위는 필요없다고 예측했지만 틀렸다던가 하는 사례를 찾아서 제시하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족도 그리 변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다큐의 기획의도를 알리면서 시청의향도 적절히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레이션은 영어로 해서 약간의 낯설음 포인트를 주면 어떨까 생각하고 당시 파트장과 함께 기획을 진행했다.

그렇게 아래의 순서대로 작업을 했다.


1. 대본작성 | 2. 콘티 기획

3. 1차 시안 완료 | 4. 2차 시안 완료 및 확정

5. 종합편집 (자막 + 음악 + 내레이션 입히기) | 6. 릴리즈


 방송 프로그램은 안에 들어가는 삽화를 위해 에이전시나 디자이너와 계약을 하고 진행하는데, 그러한 루트를 알고 있는 게 해당 기획 진행에 큰 도움이 됐다. 평소 봤던 프로그램 속 일러스트 중 인상적이었던 작가분을 찾아 쉽게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 총 30장 정도의 일러스트를 사용했고 무빙을 위해 개별 요소들을 분리해서 작업을 부탁드렸다.

콘티 요청서
완성된 이미지


 자막의 경우 1차 대본과 콘티 단계에서 이미 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내용 자체에 문제는 없었으나, 각 씬의 듀레이션과 내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길이나 노출 시점을 조정하는 작업 등을 진행했다. 이 작업이 의외로 좀 자잘하게 시간을 잡아먹었던 기억.
 

자막 관련해서 노출 시점을 요청하는 의뢰서

 
 작업 시간은 2주 정도 소요. 제작비는 총 200-300만원 사이에서 진행됐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아낄 방법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품의로는 500만원 올린 걸 고려하면 오히려 적게 쓴 셈이기도. 그리하여 아래와 같이 숏폼 콘텐츠가 나왔고 당초 목표 지표였던 10만명보다 높은 수치인 17만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최종 완성본

판타스틱 패밀리 페이스북 게시 링크

 17만...사실 요즘 콘텐츠 조회수 이야기하는 거에 비하면 너무 적고, 엄청나게 창의적인 기획도 아니다. 그래서 조금은 부끄러운 부분도 있다. 다만 당시에 마케팅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확신이 있었다. '콘텐츠 마케터의 역할은 사업기획 능력 + 사람들이 그 콘텐츠를 즐기고 놀 수 있는 2차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 이라는 것. (내가 존경하는 파트장의 지론이기도 했지만)


 그 확신을 직접 구현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 그리고 KPI도 나름 달성했다는 점에서 해당 직장에서 가장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 경험이 기반이 되어서 커머스로 이직했을 때도 직접 광고를 만들어보고 테스트해볼 수 있는 단초가 됐던 게 아닐런지.
 
 프로그램 자체도 엄청나게 성공한 사례가 아니라서 팁이라고 할 것은 없으나, 만약에 비슷한 고민, 콘텐츠 업계에서 마케팅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는 마케터가 있다면  꼭 그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을 잠정적이라도 내고, 이를 구현해 보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아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진의 결정 속에 마케터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에서 마케터란 그냥 단순한 오퍼레이터인가? 이대로 나의 장래는?..등등

 돌이켜보니 저 작업을 하고 나서 콘텐츠 마케팅에 대한 나 자신의 모호한 부분들, 애정, 장래성 등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반짝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만족시키고, 실현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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