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노니머스 프로젝트
1. 그라운드 시소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1950-1970년대에 영국과 미국의 일반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놓은 전시. 일상의 행복과 감정과 관계를 담았다는 컨셉의 콜렉션이다. 마음 따뜻해지는 기분으로 전시를 보다 보면 매우 크리피한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데.
2. 사진에 백인 외의 다른 인종은 잘 나오지 않는다. 온통 다 백인 백인 백인…수집가가 의도했다기 보다는 인종에 따른 빈부격차의 이유로 1960-70년의 흑인 가정 카메라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일테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순간’이 보편성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게 기이하게 다가온다. 특히 그 시대가 흑인들에게 어떤 시대였는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3. 인종 뿐 아니라 중산층. 차 있음. 집 있음. 가족 있음. 이성애자. 요 구조로 짜여진 풍경도 흥미롭다. 이런 것들만으로 행복이라는 타이틀을 구성한다는 점이 내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의 영어교과서 속 미국 가정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4. 보편적 감정을 이야기하지만 내용물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한번 인지되고 나면 이 전시가 다른 의미에서 재밌게 느껴진다. 이를 테면 종종 한국의 8090년도의 레트로 코드와 같은 소비를 위한 비주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때가 살기 좋은 때’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다. 시대의 역사적 명암은 사라지고 소비코드만 남는 것이다. 이 전시도 복고의 그런 한심한 측면이 있다. 선명한 복고 필름 속 백인들의 즐거운 한 때를 보고 있자면 흑인들이 버스도 못탔던 야만의 시대가 ‘미드센추리‘같은 스타일의 단어로 변신하여 심금을 울리는 코드로 남는다.
5.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풍경이란 것이 그 폭이 넓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예나 지금이나 서구 1세계 중산층의 평화로운 풍경이 갖는 힘이란 엄청나구나. 쓴맛이 나기도 하고. 전시가 이런 부분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이질감 덕에 재밌었네.
7. 좀 더 다양한 행복의 묘사를 보고 싶다. 일단 나부터 그 묘사를 늘려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