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고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Mar 05. 2023

공익성과 선정성의 사이에서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1. <나는 신이다> 3화까지 보고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 세가지 포인트이다. 하나는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하듯 이 사건들을 이렇게까지 선정적으로 연출할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2. 사건 자체가 말도 안되는 사건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이해하나 연출의 윤리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선정적인 연출이 되어야만 피해사실을 설득하고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유는 뭘까. 그러면서도 안희정 성폭행 사건에서도 느꼈지만 피해자가 직접 스스로를 드러내고 정의를 요구하는 모습이 주는 힘이 정말 강하다는 것도 실감했다. 이 용기란 엄청난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람들은 다큐나 보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는 행위를 엔터테인먼트랑 거리가 먼. 혹은 대치되는 의미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생각에는 그것도 매우 상당한 엔터테인먼트다. 


4. 나쁜 놈 욕하는 재미가 얼마나 큰가. 그리고 거기서 주어지는 두가지 쾌락, 진실을 목격했다는 즐거움과 나는 정의의 편이라는 즐거움은 사람을 상당히 중독시키는 쾌락이다. 그 쾌락이 얼마나 끝내주는지는 지금 주요 정치세력의 극성 지지층들을 보면 알 수 있다. 


5.안타깝게도 많은 다큐멘터리나 보도들이 그런 부분을 노리고 만들어진다. 어그로를 끄는 방식으로 구성돼 사람의 감정을 계속 자극하는 것이다. 분노의 엔터테인먼트가 지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냥 저 놈 죽일놈. 이 사람 불쌍한 사람만 남는 것이다. 화낼 일 많고 불합리하며 약자가 당하는 이 세상에서 분노는 물론 소중한 감정이며 변화의 원동력이다. 또 암울하고 더러운 진실이란게 있고 사람들 눈앞에 그런 진실들을 적나라하게 던질 필요도 있다. 


6. 그러나 시종일관 화만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달성하는 공익이란 무엇일까? 없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 높은 레벨을 희망할 때도 되지 않았나. 분노로 시작하되 뿌리를 생각해보게 하는 방법도 있고. 행동을 촉구하는 방법도 있고 말이다. 그런 좋은 사례들도 많다. 분노의 쾌락에 빠지지 않고도 문제를 인식하고 피해자를 응원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신이다>가 불러일으키는 거부감은 이런 면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공익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모든 과정이 분노를 일으키는 데에 집중돼 있다. 


7.나는 정명석 육성녹음이나 JMS.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피해자 동의하에 이뤄진 얼굴 공개 인터뷰. 이재록의 황당한 사건 관련 인터뷰 등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중간중간의 브릿지가 매번 이런식이다. 보십시요 교주가 이렇게 여성을 착취했습니다 이렇게 벌거벗겨서요. 보십시요 교주가 이렇게 아이를 학대했습니다. 그 엄마가 자기 뺨을 때리면서 인터뷰 할 정도로요. 그 장면들이 주는 인상은 강렬하고 그 다음의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제작진도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이들 또한 분노에 휩싸인 채 만들었다는 느낌.


8. 다른 하나는 방송의 역할에 대하여. 내가 알기로 이 콘텐츠는 넷플릭스 투자, MBC제작이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에 이것을 공급하기로 결정했을 때, 아마 제작진들은 공익성을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고된 작업인데 그런 것 조차 없이 시작되진 않았을터다. 고민을 안하진 않았겠지. 어디를 통해 방송할까? 넷플릭스라면 한국의 지상파에서 송출했을때보다 제약도 덜할 것이다. 화제성도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피해자를 위해서도 좋은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9. 하지만 그러한 결정이 발생한 우리 시대의 논리와 배경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공영방송을 통해 송출되는 것과 넷플릭스를 통해 송출되는 것은 아예 다른 맥락일 수밖에 없다.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건 공영방송을 통해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이렇게라도 화제성을 가지고 파괴력을 가지고 저 악인들을 매장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일까? 


10. 단순 시청자가 알 수 없는 훨씬 많은 복잡한 맥락들이 분명 있겠지. 한때 많은 이들이 '공영'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논쟁하고 싸웠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왠지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진 것 같다는 당혹스러움에 빠지기도 한다.


11. 마지막으로,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여러 이유들에 대해서다. 당연히 사이비 종교 범죄자들의 악랄한 수법이 제 1원인이겠으나, 다큐에서 JMS의 부총재를 하다가 지금은 반JMS 활동가가 된 사람의 인터뷰를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12.그가 JMS에 빠졌던 가장 강력한 이유는 (적어도 그의 말을 따르자면) 기존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무시되던 질문에 대해 JMS가 답을 줬기 때문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2>를 보면 사회에서 해소되지 못한 어떤 미묘하게 뒤틀린 센스나 욕망을 가진 이들, 혹은 기존 공동체에서 목마름이 있던 이들을 사이비 종교가 수거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3.근데 그런 사람만 수거해가는게 아니다. 자립하지 못하는 이들도 수거한다. 공동체라는 것은 어떻게든 사람을 빚어놓기 마련인데, 한국의 종교공동체, 크게는 사회가 길러내는 인간이란 어떤 유형일까? 


14.자립성을 허가하지 않는 것.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차단하거나 타인의 견해를 자신의 견해로 착각하는 성격을 형성하는 것. 의문에 대해 답변해주지 않고 외우라고 하는 것. 그런 성격들을 사회가 만들어 놓으면 거기에 정명석이나 이재록 같은 이들이 들어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를 가르는 것이 운 외에 뭐가 있었다고 할 수 있나.


15.천국과 지옥을 믿게 하고 기복신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 정의의 구현이 현세의 정치사회와 무관하며 중개자의 권위가 곧 진리라고 믿게 만들어 놓고 이것이 정도다. 삶이다 말하는 일들. 응당 보장되어야 할 권리와 삶의 질을 개인의 쟁취 대상으로 만들고 국가가 약자를 방기하는 일. 그것은 정명석이나 이재록 같은 이들의 먹이감을 양산하는 죄를 짓는 일이다. 다큐를 보고 다시 한번 확신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