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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19. 2023

언젠간 반드시 외로운 날이 온다

이니셰린의 밴시

*스포있음


1. 맨날 수다 떨 정도로 친했던 친구가 어느날 불러도 대꾸를 안하고 나를 무시한다. 왜 그러냐고 내가 뭐 잘못했냐고 용기 내 물어보니 그런거 없고 그냥 내가 싫어졌단다.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뭔가 내가 모르는 서운함이나 뭔가가 있겠지 하고 말도 계속 걸고 달래도 보지만 돌아오는 건 냉대와 짜증 뿐이며 다시는 말 걸지 말라며 다시 말 걸면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 나한테 보내겠단다.


2.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주요 내용이다. <세븐 싸이코패스>와 <쓰리빌보드>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이다. 아일랜드의 외딴 섬인 이니셰린 (가상의 지명)에 사는 두 친구, 콜름과 파우릭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이를 기점으로 해서 펼쳐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시놉을 처음 봤을때부터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이 감독의 영화를 모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 개봉 전 부터 계속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3. 아일랜드 내전에 대한 은유도 포함돼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관계와 고독에 대해 많은 공감을 했다. 갈등의 두 축 중 하나인 파우릭은 착한 사람이다. 동물을 아낄 수 있고 사람들에게 항상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그러나 둔한 면도 많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무골호인 그 자체다. 답답하고 폐쇄적인 마을에서 똑똑한 여성으로 태어나 매일이 스트레스인 동생 시오반이 “외롭다고 느껴본 적 있어?”라고 물어보면 “뭔 소리야?”라고 반응할 정도로 사람이 무디다. 외로워 본 적이 없는 것이다.


4. 그런데 파우릭에게 어느날 절교를 선언한 또다른 주인공 콜름은 섬세한 성격의 예술가다. 그도 문제가 있다. 콜름은 절교의 이유를 묻는 파우릭에게 너와 시간낭비하며 수다를 떨고 싶지 않으며, 의미있는 걸 남기고 싶다고 쏘아붙인다. 계속해서 우정을 복구하고자 하는 파우릭에게 다시 한번 귀찮게 하면 자기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엄포를 놓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한다. 극 내내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시간에 대한 조급함과 성취와 고요에 대한 절박함이다. 하지만 그는 파우릭을 설득할 여유가 없다. (파우릭 하는 걸 보면 설득도 안될거 같다) 파우릭은 다정함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콜름은 다정함 따위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음악만이 남는다고 말할 만큼 둘이 너무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친해졌을까.



5. 결과적으로 콜름은 손가락도 잃고 집도 잃는다. 파우릭은 다정함을 잃은 채 악에 받친 사람이 된다. 사실 보다 보면 콜름의 마음도, 파우릭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이 극단적인 상황을 그리는 것 같지만 이면에 작동하는 감정과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 다 관계에서 느껴봤을 것들이다. 이런 점이 마틴 맥도나 감독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흐름과 절정에서의 액션이 극단적이지만, 그 극단이 우리의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기에 쾌감이 있다. 그 감정이란 이런 것들이다. 어느 날 찾아오는 권태. 갑자기 이 상황을 청산할 수 있다면 극단적인 행동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압박 등.



6.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관계란 언젠가 끝나며 타인의 마음이란 결국 내 정성과 진심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외로움. 정말 매우 많이 납득하기 어렵지만, 사람이 어느날 그냥 싫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말 더럽게 눈치없이 콜름을 계속 설득하는 파우릭도, 그런 파우릭에게 자신이 자른 자기 손가락을 집어던지는 콜름도 어찌할 줄 모르는 외로운 인간들이고 말미에 가서야 그 외로움을 납득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보인다. 아일랜드 어느 시골에서 벌어지는 블랙코메디라고만 하기에는 우리 모두가 느꼈고, 느끼게 될 감정이란 점이 이 영화를 인상적인 이야기로 남게 만든다.



7.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성취를 더 중시하는 사람과 현재를 더 중시하는 사람의 화해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최근의 내 결론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콜름 정도면 차라리 양반이다. 그냥 "날 건드리지 마"라고 할 뿐이지 않나? 현실의 성취지향들은 두명 중 하나는 후자를 빼먹으려고 하거나, 천시하거나, 가르치기 일쑤다. 어떻게 보면 현실의 두 대립이 영화 속 대립보다 순할 것도 없다. 심지어 이니셰린은 시골이라 조용하기라도 하지, 현실사회는 파우릭 같은 사람을 가만 두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파우릭도 손가락 자를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8.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타인의 거절을 견뎌야만 하는 순간이 오고, 그 순간의 대처가 우리의 성숙함을 이야기해준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는 그 거절을 자기 손가락 자르듯 해서는 안되는 순간이 있지만 또 손가락 자를 각오를 해야 할 때도 오긴 온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근본적으로 외롭고 황량한 곳이며 우리에게는 살 날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기에. 다정함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기도 해야 하지만 거절을 잘 견뎌내거나, 또 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손가락 5개를 다 자르고 나서도 또 아무렇지 않은 듯 2시에 펍을 가서 맥주를 마실 날이 오기도 하겠지. 보고 나면 정말 세상 쓸쓸해지는 영화고,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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