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Sep 22. 2023

상세페이지, 안 읽어도 사고, 다 읽어도 안산다.

상세페이지는 죄가 없지만...

1.프리랜서를 시작하고 나서 상세페이지를 손댈 일이 더 많아졌다. 한동안은 상세페이지를 디테일하게 쓰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회의적인 시기도 있었는데 요 근래 몇가지 사례를 보면서 상세페이지는 무조건 자세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굳히게 됐다. 몇가지 사례가 있었다.


a. 상투적인 '전문가 추천 배너'를 달았는데 전환율이 3%대에서 4%대로 상승.

b. 1년 넘은 상세페이지를 디자인 리뉴얼하고 GIF를 추가하니 전환율이 3.5%에서 4%대로 상승

c. 상세페이지를 10회 이상 수정했는데도 전환율이 늘지 않다가, 영상광고를 적극 집행하며 전환율 상승.

d.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됨. 광고를 바꿔도, 상세를 바꿔도 소용 없음. 상세가 러프할때나 디테일할때나 비슷함.


 작업을 해놓고 보니 기대보다는 많이 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되는 경우보다 안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왜일까? 상세가 매력적인건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객단가라던가, 재구매 이런 것들은 일단 제쳐놓고 생각을 해봤다. 어차피 그것은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고 당장 오늘 하루의 매출이 급한 스몰 브랜드들은 1%의 전환율이 아쉬우니까.

인터넷만 뒤져도 '상세페이지가 문제입니다' '상세페이지를 고치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게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조금 애매하다. 정말 사람들은 상세페이지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구매성향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있는 특정 플랫폼이 아닌 이상, 구매에 결정을 끼치는 요인의 1순위는 상세페이지가 아니다. 



2.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서 제품을 런칭하고 나면 생각보다 바꿀 게 정말 많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히트맵 툴을 쓰면 어떨까 고민한다. 무슨무슨 툴을 쓰면 사용자가 페이지의 어느 영역에 집중하고 이탈하는지 평균치를 보여준대! 뭔가 내가 생각치 못한 엄청난 액션이 도출되지 않을까?  얼마전 면접을 본 디자이너분도 이런 분석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계셨다.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던 거다.

그런데 사실 이런 툴을 통해 사용자 행동을 분석하다 보면 두가지를 깨닫는다. 첫번째, 사람들은 정말 가격과 리뷰에 민감하구나. 이 두 영역에만 정말 히트맵이 빨~~~갛게 칠해져 있다. 그리고 거기서 나간다. 때문에 오히려 이런 툴들은 상세페이지 구성보다는 초반 진입때의 UX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많은 역할을 해준다. 


(c) 2020. justinmind

 두번째, 대다수는. 그러니까 90% 이상의 사람들은 상세를 중간까지도 안읽어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건 아무리 멋들어지고 디테일한 상세를 만들어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웹에서 페이지를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서 보지 않는다. 실제로도 GA 기여모델 등으로 봤을 때 사람들이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이 그다지 길지가 않다. 상세를 다 읽는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시간이 기록돼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길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만약 사이트가 버벅거려서 늘어나고 있는 거라면?  상세를 안읽어도 산다. 상세를 끝까지 읽어도 안산다. 이 경우가 수없이 많다. 




3. 100명이 들어왔다. 95명은 비싸다, 리뷰가 맘에 안든다, 내가 홀렸나보다...등등의 이유로 나간다. 5명이 남았다. 이 5명만 돈을 써줘도 브랜드는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5명 중 2-3명은 그냥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돈을 낸다. 들어오기 전에 구매를 마음먹은 상태인 것이다. 객단가의 문제는 여기서 제외했다.

 광고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브랜드라면, 구매자의 60-80%는 이미 검색이건 영상광고건 바이럴이건 제품 마케팅에 노출된 순간 '와 이건 사야 해' 라고 들어와서 바로 결제를 진행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정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이렇게 물건을 산다. 나도 쇼핑을 10번 하면 그 중 1~2번 정도만 상세를 보는 것 같다. 이 추세는 아마 계속될 것이다. 단순히 마케팅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제시스템이나 광고플랫폼에서 랜딩페이지로 넘어가는 매끄러움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스무스해졌다.



4.그럼 상세페이지란 결국 남은 1명에서 2명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이들은 가게에는 왔지만 고민이 많다. 물건도 좀 더 살펴보고 싶다. 내일 다시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가게가 좀 더 꼼꼼하게 DP가 돼 있고 붙어서 디테일하게 설명해준다면 돈을 쓸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들어왔건 남들보다 소비결정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꼼꼼한 타입일 것이다. 모든 쇼핑을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파는 제품 카테고리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결국 상세페이지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마지막 PT다. 일단 데려오는 것 까지는 성공했으니 우리 제품에 대한 관심은 있다! 가격도 어느정도 납득했다! 


1~2%라고 하니 너무 적게 느껴지겠지만 하루 방문자가 5천명이고, 객단가 3만원의 제품을 판다고 가정해보자. 상세를 개선하면 올릴 수 있는 전환율이 3%->4%라고 해보자.


간단한 계산이다. 상세 개선 전에는 5,000*3%=150, 150*30000 = 450만원의 매출이었던 것이 200*30000=600만원의 매출이 된다. 0.5%만 늘어도 525만원이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매출에 시달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5. 그래서 브랜드의 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 플랜 A는 상세를 읽을 필요 없게 하는 것이다. 유입 전의 콘텐츠들로. 그게 메타광고건, 바이럴이건, 인플루언서건 뭐건 간에 가게 방문 전의 영업으로 구매를 마음 먹게 하는 것이 가장 먼저 진행되야 하는 일이다.


이런 부분들을 브랜드들이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게 반영돼 최근의 영상광고가 다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초반을 후킹하게 한다는 기조는 동일하지만, 요즘 메타나 구글에서의 영상광고를 보고 있자면 일종의 영상 상세페이지, 혹은 제품 PT라는 생각이 든다. 훨씬 친절하고 자세해졌다. 드라마타이즈 같은 광고들은 거의 멸종됐다. 심할 때는 진짜 2컷 내로 제품광고가 끝나기도 한다. 광고 내에서 다루는 제품의 포인트도 조금 더 많아졌다.


6. 그 다음 플랜 B는 '꼼꼼하고 고민 많은 고객들'을 위한 PT를 준비해놓는 것이다. 아직 머뭇거리는 분들을 위해서 정말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제품이 어떤 가치제안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을 상상하게 할 것인지, 어떤 리뷰를 내세울 것인지 등등...이 사람들을 잡는 것이 1~2%의 전환율을 가르고, 이게 일 매출 기준으로는 수백만원을 가르게 된다.


7. 그래서 어쩌면 한동안 '상세 디테일하게 해도 소용 없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전환광고가 잘 나왔던 시기, 혹은 그런 것에 최적화된 제품만 팔았기 때문에 한 생각일 수도 있다. 위에 말한 4가지 사례도 이러한 연장선상이다. 광고를 보고 보통 들어오자마자, 초반에 결정하기 때문에 a가 발생했고, 꼼꼼한 사람들이 있으니 개선 후 b가 발생했고, 가장 큰 고객층인 '상세 보기 전 구매층'을 설득할 수 있었기에 c가 가능하고. 어떻게 해도 설득이 어려운 제품이기에 d 같은 경우가 있는 것이다. 


8.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다시 한번 제품의 판매에서 '뭐든 팔수 있다'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무엇을 해도 안되는 제품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뭐든 팔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각 제품과 궁합이 맞는 파는 방식이 있고, 그 방식이 무조건 최적의 매출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살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무조건 우선이고, 그 가치제안이 소비자가 느끼기에 적합한지가 두번째이다. 두가지가 없는데 어떻게든 밀어넣어서 판다는 건, 이제는 달갑지도 않거니와 냉정하게 말하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이런 제품들도 난이도가 높기야 하겠지만 상세를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판매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9. 그래서 나는 커머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면 그렇게 할 것인가?'와 '주변 사람은 그렇게 하는가?'를 계속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매우 쉽다. 툴을 깔 필요도 없다. 나라면 살까? 나는 상세를 봤던가? 이 가격이면 나는 납득하나? 

인터넷 쇼핑은 이제 너무나 흔한 일이 됐기 때문에 만약 스스로가 쇼핑을 자주 하는 타입이라면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상세페이지 얼마나 자주 보세요? 뭐 보고 사세요? 근데 나는 자신이나 주변의 쇼핑 행동에 반하는 행동을 자기 브랜드 고객들에게 기대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이커머스라고 해도 결국은 '장사'이기 때문에 좀 더 자기 자신과 주변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뭐라고 사람을 뽑니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