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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10. 2017

누가 죄인인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보고 쓰다

  헌재의 탄핵판결 전문을 보니 두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세월호는 박근혜 탓인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헌재에서 세월호를 탄핵사유로 인정한다면 세월호 문제는 깔끔하게 정리 되는가? 혹은, 세월호를 재발하지 않는 기준이 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박근혜 탓인가. 이 질문은 계속 우리를 사로 잡아왔다. 그러나 많은 훌륭한 이들이 지적했듯이 세월호는 그냥 박근혜 정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민주화 이후에 계속 이뤄진 국가 책임의 외주화,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해버리는 이 사회의 끝에 세월호와 박근혜가 있다. 우리가 민주당 정부에 좀 더 성실성을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과 박근혜의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현장 지휘관에게 업무를 일임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박근혜는 그렇지 않았다 정도인데 그럼 외주화의 끝에서 현장 지휘관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과 박근혜에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같이 이뤄져야 하는 문제이지만 후자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자가 성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세월호에 대한 책임 또한 탄핵 사유로 인정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판결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그 지적에 무척이나 공감하지만 이번 판결이 하나의 선례이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무능이나 무책임을 탄핵 사유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수도 있다. 누군가는 세월호 같은 사건에 대한 판결을 어떻게 악용하겠느냐고 하지만..우리는 이제 그런 말이 얼마나 순진한 기대인지 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헌재는 보충의견을 남겼다


이 결정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그 취지는 피청구인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법정의견과 같고, 피청구인이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대통령들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상실되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보충의견은 정말로 소중하다. 파면 사유가 안될 뿐 의무를 위반했고, 불성실했다.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후대를 위한 나름의 절충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무엇보다, 나는 세월호가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판결에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장에서 버텼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 정부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노동문제였건, 이대문제였건 지난 4년간 정부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항상 세월호를 마음속에 품고 거리로 나갔다. 그 수많은 순간들이 연결돼 오늘이 나타났다. 파면 사유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었다 하더라도 결국 세월호 유족의 승리고 우리 모두의 승리다.


  무엇보다, 나는 헌재가 의도한바는 아니지만 오늘의 판결이 결국 세월호 문제가 박근혜 하나를 없앤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환기시켜줬다고 생각한다. 헌재라는 최종 결정권자가 세월호에 대해 이건 옳다 그르다를 결정해줘서 해결될 문제라고 그 누가 생각했었나. 생명권,인권이란 최종 결정권자의 시혜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정치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문제다. 이제 정말로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경근 씨가 '예은이가 왜 별이 되었는지 알아내기 1일' 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로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말이다. 유족 여러분들 축하드립니다. 정말로 백번 천번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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