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관리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어 반년 넘게 연속측정혈당기를 쓰고 있다. 프리스타일 리브레라고 불리는 이 기기는 내 몸에 붙여놓고 핸드폰으로 스캔만 하면 혈당 상황을 알려준다. 2주간 사용이 가능하며, 개당 가격이 10~11만원 정도로 조금 비싸지만 채혈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편하고, 정확도가 높다.
그러다가 최근 집중적으로 광고를 봤던 '글루코핏'이라는 서비스를 신청해서 사용하게 됐다. 연속측정혈당기와 연동해서 식단,운동 등의 생활패턴을 입력할 수 있고, 거기에 따른 혈당 변화치를 디테일하게 모니터링 해주는 서비스다. 같은 형태의 서비스로 당뇨 관련 헬스케어 서비스와 식품 전문몰을 운영하는 닥터 다이어리가 런칭한 '글루어트'가 있다.
이렇게 들으면 당뇨 환자분들 타깃의 서비스 같지만, 아니다. 혈당 관리가 곧 다이어트에도 직결된다는 점을 활용해 체중관리 소구를 중심으로 전개해나가는 브랜드이다. 사실 처음에는 리브레만 써도 되는데 저게 굳이 니즈가 있을까?..했는데 막상 써보니 아래 이유에서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이런 서비스 상품의 거의 정석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1. 디테일한 모니터링에 따른 게이미피케이션 요소
이 서비스는 내가 식단/운동 등을 입력하면 이후의 예상 혈당치와 개선사항, 내가 입력한 액션 이후 혈당이 실제 어느정도 올랐는지 등을 모니터링 해준다. 계속 관리를 해온 사람 입장에서, 직접 받아본 예상치와 개선사항은 사실 정확하진 않다. 개개인의 상황이 다 달라서 그렇다.
중요한 건 디테일한 모니터링과 이에 따른 액션 유도다. 리브레도 기존 앱이 있으나 단순 메모 기능 정도만 지원해서 따로 분석하지 않으면 내 생활에 따라 어느 정도 오르고 내렸는지 추이 정도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비해 글루코핏의 모니터링은 훨씬 편하고, 그래프도 매우 명확하게 보여준다.
혈당은 즉각적이다. 뭘 먹고 뭘 했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요동친다. 자신의 액션이 실제로 수치로 나타나다 보니 혈당을 잘 관리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하는 그래프를 보는 것이 꽤 쾌감이 있다. 전형적인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다. 어제는 8시간 공복 유지했으니까 오늘은 12시간으로 해볼까? 밥을 반공기 정도 덜 먹으면 어느 정도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 스쿼트 개수를 늘리면 식후 혈당 억제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던 햄버거는 어느 정도 안좋을까? 등등.
물론 기존의 운동 관련 앱들도 이러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지만, 연속혈당 측정기 자체가 끊김 없이 연속적으로 내 상태를 기록해주는 기기이다 보니 이런 요소가 더 극대화된다.
2. 혈당관리에 대한 상세한 교육자료가 매우 잘 돼있다.
매우 읽기 쉬운 분량과 자간,형태로 정리돼 있고, 이것을 앱 내에서 주기적으로 부담 없는 수준으로 푸쉬해준다. 하루에 아티클 3~4개 정도를 읽는 방식인데 개별 아티클의 분량 자체가 그리 많지 않고 글도 깔끔하다. 글루코핏 사용자들은 이제 막 혈당관리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 분들에게 중요한 정보들이 매우 잘 정리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3. 가장 중요한 것. 카카오톡 단톡방 커뮤니티가 매우 활성화가 잘 돼있다.
앱 내에서 단톡방 연결을 선택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한 만족도도 꽤 높았다. 보통 커뮤니티 서비스를 붙일려고 하면 브랜드 스스로도 목에 턱턱 걸리는 부분들이 생길 때가 많다. 우리 제품이 애시당초 커뮤니티 성이 없는데 굳이 구매자들이나 체험자들을 모아서 뭘 해야하지? 하지만 이 제품은 기본적으로 건강 관리에 대한 것이고, 위의 요소들까지 더해지니 사람들이 그냥 모여만 있어도 할 얘기가 산더미다.
커뮤니티에 혈당 관리를 오래 해오신 분들이나 체계적으로 건강관리를 하셨던 분들도 계시다보니 그 분들이 주는 관리의 노하우라던가 이상 상황에 대한 대응이 공유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매우 훌륭하다. 또, 연속으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이다 보니 다들 본인이 먹은 음식이 얼마나 혈당을 올렸는지, 무슨 운동을 하면 내려가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위에서 말한 1번의 과정이 공유의 형태로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고, 글루코핏이 다 챙길 수 없는 부분들을 이 커뮤니티가 해결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연히 오가닉하게 형성된 커뮤니티니 사람들의 제품에 대한 반응을 살피거나, 서비스 개선사항을 확인하거나, 모니터링을 하는 것에도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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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지점을 더 생각해봤다.
1. 제품의 가격대 자체가 높다.
1개월의 가격이 27만원, 6개월은 7만7천원, 1년은 4만 7천원이라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물론 연속혈당 측정기가 제공된다는 점과 (1개월만 해도 기본 20만원어치를 주는 셈)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결코 비싼 가격은 아니다. 또 이 가격을 통해 어느 정도 유저의 밀도가 높아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혈당 측정 및 건강관리에 월 4만 7천원을 쓸 정도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디테일하겠나! 하지만 얼리어답터 다음 단계의 사람들에게 이 가격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2. 디테일하게 관리 안해도 되는 순간이 온다.
한편으로는 이 서비스가 1년을 사용할 만한 지속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 또 고민의 여지일 것 같다. 내부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1년 이용권을 객단가 측면 뿐 아니라 지속성 측면에서도 더 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건 서비스의 문제라기보다는 관리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모든 건강 관리가 마찬가지만 처음에는 내가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고, 바꿔야 될 게 많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혹은 속상하게 다가온다. 변해가는 수치에 일희일비 하기도 쉽다. 그러나 큰 틀이 잡히게 되면 디테일보다는 장기적인 추세에 더 집중하게 된다.
사실 매 순간을 디테일하게 본다는 건 지속 가능한 일이 아니다. 혈당관리기가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차피 이제 내가 뭘 먹어야 건강하고 뭘 해야 활기찬지 아는데 굳이 2주에 10만원씩 지출하면서 기기를 사서 체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정 레벨 수준 이상의 습관만 유지한다면 건강하게 지내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시기가 온다.
결국 그때부터는 초기 단계의 디테일한 모니터링과 개선보다 그때까지 확립 된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당연히 초기 단계에 습관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교적 이른 시간대에 서비스에서 이탈하겠지만, 서비스를 잘 활용했던 사람들도 필연적으로 뜸해지는 시기가 올 수밖에 없는 속성의 제품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3.결국 무언가를 더 팔아야.
그런 면에서는 사실 커머스를 가지고 있는 닥다몰의 글루어트가 글루코핏보다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루코핏도 결국 커머스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닥터 다이어리는 이미 꽤 큰 몰과 좋은 브랜드 (무화당)을 가지고 있다. 혈당관리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브랜드들을 모를 수가 없고 계속 사게 된다. 무화당의 제품 퀄리티도 꽤 높다. 당연히 식품 사업이다 보니 비용통제가 쉽지는 않겠지만 글루어트-닥다몰-무화당의 연계는 2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글루코핏을 통해 혈당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은 닥다몰 제품을 사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연속혈당 측정기의 가격과 앱 서비스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신규구매자 가격을 일정 수준 낮출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정확하다. 더 편의성이 높다 하는 것도 차별화 포인트가 되는 데는 어느 시점부터 한계가 온다. 결국은 혈당관리를 통한 삶의 질 개선이라는 컨셉 하에 짜여진 상품들의 연계 형성이 핵심이고, 그렇다면 반복구매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식품 브랜드나 종합몰일 수도 있지만, 차라리 프리미엄 타깃을 노리는 종합 관리 패키지 같은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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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있는 분야 (혈당관리) 이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쓰게 됐는데, 아마 내부에 계신 분들은 훨씬 더 많은 고민과 실행이 있으실 것이다. 만듦새의 수준이 잠깐만 써봐도 많이 느껴졌고, 그래서 더 많이 살펴보게 됐던 것 같다. 혼자 분석을 하다 보니 다시 한번 제품의 설계 속에 앞으로의 가능성과 한계 모두가 들어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계속해서 좋은 서비스 유지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