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에 요요를 시작했으니 24년을 했다. 반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stringlife라는 아이디도 20년을 썼다. 중학교 2학년이 마흔이 됐고 학생이 사회인이 됐고 수없이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졌다.
어릴때 어른들은 중장년이 됐다. 내가 요요를 할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세계챔피언이 되고 이 판의 인플루언서가 됐다. 같이 하던 친구들은 떠나거나 현역으로는 플레이하지 않는다. 내 또래에는 나만 현역으로 대회에 남았다.
그 긴 시간 내가 먹은 밥과 술이 몇그릇이냐. 소주 맥주를 밤새 마시던 젊은이는 혈당에 벌벌떠는 아저씨가 됐지만 요요는 여전히 잘 하고 싶다. 이제는 이걸 분리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취미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지경이 됐다.
요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부럽다’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 있는게 부럽다는 얘기다. 근데 다 장단이 있다. 나에게 많은 기쁨을 줬지만 또 그만큼의 스트레스와 불안도 줬다.
나 자신과 화해해야만 했던 시기에는 ‘나는 요요 말고는 잘하는 게 없구나’싶어 나를 하찮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이것 때문에 못하거나 놓친 것도 많다.
이제는 원래 취미란 쓸데없는 것이고. 쓸데없어야만 행복하다는 걸 안다. 나이가 들어서는 언젠가 이 조그마한 장난감과 헤어져야 한다 생각하니 우울하다. 여전히 좋아하고 잘 하고 싶으니까 괜한 이유로 혼자 속상할때도 있다.
아싸로 마무리될까봐. 놓칠까봐. 밀려날까봐. 많은 것들이 갖춰지고 평균 수준이 높아진 지금 세대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다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제 앞으로 할 날이 지금까지 한 날보다 짧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계속 하고. 또 계속 대회에 나가고 싶다.
이 작은 취미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 그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가. 나 정말 많이 애썼다. 모든 일에 절박함 하나 없이 살았던 안이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애쓴 일이다. 나는 이 플라스틱 덕분에 세상만사 상관없이 개인이 지켜낼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냥 시간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까마득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