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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13. 2017

양심의 문제라고 하여 처벌하지 않을 것인가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를 읽고 쓰다.

  과거사나 권력의 인권유린 문제가 한국에서 터질 때마다 독일을 모범사례로 들곤 하지만, 많은 기록들이 독일의 과거사 청산 또한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독일의 책임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재발을 방지하고자 노력했으나, 어떤 이들은 나치의 죄는 '전쟁에서 진 죄'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과거사 청산을 비생산적인 일로 치부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런 갈등을 정리하고 과거의 죄를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독일의 모습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책이 있다. 철학자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다. 이 책은 나치정권과 홀로코스트,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독일의 정치적 책임과 죄를 정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정리해놓은 텍스트다. 법적인 죄, 정치적인 죄, 도덕적인 죄, 형이상학적인 죄. 4가지 형태의 죄를 제시하는 야스퍼스는 이 분류를 기반으로 미증유의 죄의 문제 앞에 선 독일 국민에게 책임을 촉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책임이란 '독일 국민 모두가 죄인입니다' 라는 무의미한 미사여구거나, '독일 국민은 죄가 없고, 나치당만 죄가 있다'라는 무책임한 비난이 아니다. 독일 국민에게 단체로 법적인 죄을 묻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거나, 부당한 인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법정에서 유죄 무죄를 판결할 수 없는 정치적 책임과 형이상학적 책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통감해야 하는 집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야스퍼스는 인정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결국 개개인의 양심의 법정을 통해 판결되고, 실행되야 한다는 게 <죄의 문제>의 주장이다.  


  야스퍼스가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나치의 정치가들이나 적극적 부역자들은 뉘른베르크 법정을 통해 법적 처벌을 받고, 그 처벌의 과정과 결과 자체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되서 인류에게 반인권적 범죄를 막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듯 하다. 때문에 야스퍼스가 이야기하는 죄의 문제는 실제 그 범죄에 얼마나 참가했는가, 동조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차원을 전제로 하게 된다. 즉, 같은 인류이기 때문에 불의에 대해서 저항하고, 이를 막아야 하는 책임이 형이상학적으로 발생하며. 그러지 못했을 경우 그 폐허속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가 되는 차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스퍼스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결국 개개인의 각성과 행동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결국 어쩔수 없이 한국의 권력자들이 해온 반인류적 행위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법 위에 있어서, 법을 잘 알고 있어서 빠져나가는 저 '정치적,형이상학적 범죄자'들은 결코 양심의 법정에 설 일이 없을진대. 이 4가지의 죄의 분류와 결국 양심에 죄를 물어야 한다는 야스퍼스의 이야기는 너무나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죄,정치적 죄에 실제로 책임을 묻고, 그에 따른 현실의 구속과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정의의 법정을 원한다. 야스퍼스의 법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양심을 가진 이에게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도 알았는지 책임소재와 재발방지를 논하는 그의 이야기는 다소 맥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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