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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14. 2017

사회 없이 마음도 없다.

<대한민국 마음보고서>를 읽고 쓰다

  야근만큼이나 괴로운 게 일이 없을 때입니다. 일이 적으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 괴롭습니다.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전자가 낫습니다. 일이 없으면 미래가 없는 것 같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니까요. 금요일 밤은 너무나 행복하지만 일요일 밤은 세상 제일 불행합니다.

요즘 제 상태인데, 일을 하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즐거운 시간이 없다고는 말 할수 없지만 항상 초조함과 미래가 없다는 생각, 시간낭비라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겠지만 직장인이 아니라 취업 준비생도 초조함과 불안함은 마찬가지일테죠. 우리 모두는 이런 느낌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란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고통은 언제나 1인분이고 세상과 연관이 있다는 건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는 뿌옇게만 느껴지니까요.

 

 <대한민국 마음보고서>는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많은 위안과 생각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근 10년간 한국에서 어떤 종류의 심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지, 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되긴 하나, 책이 지적하는 대한민국의 주요한 심리적 문제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졌다. 둘째. 사람들이 매 순간 불안해 하며 산다. 셋째. 사람들이 타인을 귀찮아하거나, 부담스러워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이 문제들의 근원에 대해 저자는 개개인이 '1인분의 삶'을 감내하기도 버거워진 경제적 상황, 유년기 때부터의 경쟁 과열로 인한 대인관계 능력 상실과 학원 강습의 신봉, 정보과잉을 강요하는 시장, 여성혐오 정서 등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 대다수가 고학력/고소득층 남성인데, 이 까닭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문제의 근원은 결국 대인관계 능력의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유년기때부터 과열된 경쟁환경 탓에 집-학교-학원의 쳇바퀴를 도는 아이들은 대인관계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성공/실패의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겨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경우, 그때 가서 다양한 이들을 만날 기회가 열리는데 제대로 된 경험이 없으니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평면적이고 극도로 자기본위적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아이 때부터 다양한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연애도 하며 희노애락을 느끼며 성장했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100%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 답을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단순하게 요약했지만 정말로 사회의 형태가 인간의 심리적 병증을 만들어내는 생생한 묘사 중 하나인 셈입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다시피, 책은 심리적 문제를 결코 개인이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종류의 문제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맥락 위에 개인의 구체적 경험이 결합되며 발생하는 문제로서 심리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책에 나온 다양한 양상의 심리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겁니다. 때문에 책을 읽고 나면 내 마음을 조성한 사회 환경에 대한 어느정도 이해를 갖게 되는데, 이 자체로도 어느 정도 마음의 체력이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저자는 문제의 원인 분석 다음에 끝에 가서 나름의 위안책들을 제시하는데 특히 자아와 사회관계에 대한 조언이 눈에 띕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모습의 범주를 넓힐것. 그리고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든 만들어 나갈 것. 무엇보다 사회가 변화해야겠지만, 그 변화의 시기까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아남게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우리 마음이 버틸 수 있도록 좋은 조언을 해주는 어른의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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