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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Nov 09. 2024

데이터는 과거일 뿐

브랜드 인수 과정의 교훈 1.

1. 브랜드 인수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브랜드의 성장을 예측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겸허한 마음이 든다. 

전문 인수사들은 다 나름의 인수 팀을 두고 있지만, 내가 다녔던 곳은 너무 초기였고. 인수 후 성장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마케터와 기획자, 디자이너까지 모두 달려들어서 인수 브랜드에 대한 의견을 내고 야근하면서 검토했었다. 



당시 첫 검토 브랜드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이었지만 인수는 결국 진행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노다지를 찾았구나. 나는 반년 정도 담당했지만 이후에도 옆에서 성장을 볼 수 있었다. 이 브랜드는 지금 연 몇백억 매출을 내고 있다.

2. 당시 우리의 부정적 의견은 아래와 같았다

-같은 제품이 현재까지 성과를 낸 적이 없다
-시장에서의 키워드량이 크지 않다
-인수금액을 밀어넣기에는 이 브랜드의 기초자산과 실적이 너무 부족하다.
-독자적인 기술이나 디자인이 없다.
-재구매가 기대되지 않는다.
-원가가 낮지 않다.

우리가 본 긍정적 의견은 아래와 같았다.

-콘텐츠를 명확하게 뽑을 수 있다.
-해당 트렌드의 수요가 회복되면 일정 수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가져올 매출이 분명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렌드가 회복되는 타이밍에 명확한 콘텐츠가 쏴졌고
-기존 업체들은 이 카테고리의 가능성을 몰랐다
-그러니 이 제품이 크는 만큼 키워드도 커졌고. 
-그 이후로는 일반키워드보다 더 커졌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스펙/디자인은 그렇게 고도화 된 게 아니었다.
-재구매가 일어났다. 그런 카테고리가 아닐거라 생각했음에도.


4. 이런 경우는 이제는 흔치는 않다. 어찌보면 정통 미디어커머스 방식으로 밀어올린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당시 브랜드가 너무 초창기였고 시장이 열리는 상황이어서 더 득을 본 것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들 데이터를 보고 사례를 보고 나름 업계 꾼들이었는데도 오판했고. 도박 같아 보였던 어떤 판단들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개인에 있어서 이 에피소드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성장을 판단할 때, 데이터는 어디까지 참고가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알 수 없다‘ 이다. 뛰어들어야만 알 수 있다. 

이후의 인수에서도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간에 예측은 빗나갔다. 물론 명백히 나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죽어가고 있었음에도 오판한 케이스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또다른 극단적 케이스일 것이다.

5.성장 판단에 있어서 과거의 데이터를 보고 예측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효과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문제를 찾기 위해서, 흐름을 인지하기 위해서 데이터 파악은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 기록으로 성장을 예측하는 건, 많은 경우 소설이나 기도에 가깝다.. 브랜드란 수요 창출의 예술이기에 시장의 기회라는 건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 같진 않다

6. 무엇보다 그런 예측은 수많은 If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을 해결하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게 오히려 성장 예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해결되야 할 문제를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종류인가? 그것이 반드시 해결되야 하는 문제고. 우리가 해낼 수 있다면 한다. 어렵다면 그 브랜드의 성장은 우리 몫은 아니다.

예측 이후에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로서 결국 브랜드가 놓여진다. 그 다음부터는 예측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올려야 하는 것이다. 소설쓰기의 시간은 끝나고 한푼이라도 더 팔아봐야 하는 진땀의 시간이 된다.소설 속 갈등과 인물묘사가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현실의 인간이 가진 역동과 복잡함에 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다.

7.그래서 이 사례를 생각할 때마다 겸허해진다. 내가 성장하는 법을 알고 있나? 경험은 자주 해봤다. 그러나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러저러한 요인들 덕에 잘 됐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런 요인들을 미리 챙기고 간다면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또 드라마틱하게 잘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프리랜서 일을 할 때도 내게 놓여진 브랜드들의 성장성에 대한 판단을 굳이 하지 않으려 하게 된다.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내가 판단할 일도 아니고 그런 전문성도 없다. 내가 아는 성장의 방법은 상업의 세계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인가 아닌가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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