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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도, 사기도 안되는데 왜 성매매만?

성매매에 관한 칼럼을 읽고 쓰다

by 줄타기인생

1. 성매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걸레'이고 구매자는 '그럴 수도 있다'로 보는 시선에서부터 구매자만을 처벌해야 한다는 시선까지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 합법화-불법화에 대한 주장이 나오는데, 합법화 쪽에서 성매매 관련 논의가 있을 때마다 항상 사용되는 논리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자'이다. 이 논리는 '남자는 원래 동물이에요'에서부터 '사회안정을 위해 성매매를 합법화하자'까지 다양하게 변주된다. 같은 맥락에서, 아래 링크한 중앙일보 오피니언을 통해 양선희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실 새로운 논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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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매매 정책의 은밀함과 위선의 필연적 결과는 아닐까. 인간의 삶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한다. 한데 추함을 인정하지 않고 위선으로 포장하려 들면 삶은 왜곡된다. 성매매는 인간의 가장 추한 삶의 한 단면이다. 추한 삶이 세상을 더 혼탁하게 만들지 않도록 단속하는 방식은 없는 척 덮어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나라하고 치열하게 대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매매 정책과 관련해선 먼저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끊게 할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면 반드시 그 이면에선 거짓과 범죄가 싹트고 음지의 산업이 발달한다. 음지에선 언제나 약자들이 유린당한다.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의 비범죄화를 권고한 것도 이 산업의 최약자인 성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관련 범죄가 음지에서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우리는 음성적 성매매 조직은 뿌리 뽑고, 여성 인권은 보호하고, 국제적인 K걸의 오명을 벗는 성매매 정책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고민해야 한다. 위선의 탈을 벗고서 말이다."


언뜻 보면 이 글은 '위선 떨지 말고 성매매를 합법화 하자'는 이야기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이 언급한 국제앰네스티의 성매매 비범죄화 권고에 대한 기사를 좀 더 찾아봤다. 몇 가지 기사를 보고 나니 이 논설이 좋게 말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글이고, 나쁘게 말하면 해당 권고를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쓴 글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 왜 포주들을 보호하려는가라는 질문에 앰네스티는 “우리의 정책은 ‘포주(pimps)’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성노동자를 착취하고 유린하는 제삼자는 우리가 제안하는 정책에 따라 여전히 처벌 대상이 된다”고 답한다. 성매수자만 처벌하는 이른바 ‘노르딕 모델’에 왜 반대하는가라는 비난에는 “많은 성노동자들이 국제앰네스티에 구매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하도록 구매자의 집으로 방문해 줄 것을 요구받는다(그만큼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의미)고 말했다”며 “성노동은 노르딕 모델에서도 여전히 큰 낙인이 찍혀 있으며, 이 낙인으로 인해 차별받고 소외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 한국일보 칼럼에 따르면 앰네스티 권고안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성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하여 다른 노동자들이 갖는 권리를 가지게 하자. 그렇게 하면 법의 테두리 내에서 부당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대항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포주들이 보호되는 게 아니며, 만약 비범죄화 전 후로 똑같이 폭력적 행위를 하는 이들은 여전히 처벌 대상이 된다.


물론 이렇게 비범죄화를 한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성노동이라는 특징을 고려했을 때 과연 성노동자의 지위를 합법화한다고 해서 성노동이 만드는 여성의 종속적 지위가 해결될까? 성노동이라는 반인권적 행위에서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계약관계가 일반적인 관계처럼 작동할 수 있을까.


3. 이런 의문을 일단 제쳐놓고, 이 기사를 토대로 양선희 논설위원의 글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가 말하는 위선이란 아마도 '성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포함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봐도,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끊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 점에 대해서는 호의적 해석이 어렵다. 성매매에 대해 위선과 개선책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철저히 성노동자에게 맞춰져야 하며 포주, 구매자 등은 거기서 제외되어야 한다. 앰네스티 권고안에서도 이 부분이 쟁점이었다는 점을 짚지 않으면 곤란하다. 더군다나 양선희 논설위원이 말하는 사례는 남성의 욕구문제가 아니라 수사력 부족, 수사 의지의 부족의 문제로 판단된다. 왜 현행 조직의 부정부패가 남성 욕구의 문제로 연결되는가. 현행 조직의 부정부패는 남성들의 억제할 수 없는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4. 우리는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살인이 사라질까? 사기가 사라질까? 이혼이 사라질까? 나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리라 본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인을 규제하고, 사기를 처벌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은 대상이 악인일지라도 '그래도 그러면 안돼'라고 말하며, 이혼에 대해서는 '모두가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얘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그 행동들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회를 망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성에 대해서는 이리도 예외가 되는 것인가? 성에 대해서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가 수없이 통용된다. 왜냐면 우리가 생각했던 '사람'이란 이성애자 남자였고, 그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설정하고 행해왔던 성 욕구라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효과를 끼쳐왔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기사 2천 년이 넘는 세계관이니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알겠다.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 때는 노비를 죽여도 살인이라고 생각 안 했던 거랑 마찬가지의 원리일 게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은 '어차피 성매매는 안 없어지니까 위선을 버리자'라고 말하는 때가 아니다. '모든 남성은 성매매를 끊을 수 있다' 고 말하는 게 인간다운 일이다. 소아병스러운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누가 당장 세상에서 이 모든 고통을 100%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고통이 100% 존재하는 세상보다 90% 존재하는 세상이 낫고, 90%보다는 50%가 존재하는 세상이 낫다. 도달할 수 없으니 인정하자는 말은 한방에 일소할 게 아니면 그만두라는 극단주의나 다름없다. 양선희 논설위원의 말대로 위선이 존재한다면 그 위선은 '저들은 문란하고, 게을러서 쉽게 돈 벌려고 한다'라고 성노동자를 손가락질하며 그 뒤의 구조를 보지 못하는 우리의 편견이지 다른 게 아니다. '남성은 성매매를 끊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게 위선일 수는 없다. 그건 위선이 아니라 다짐과 이상에 가깝다. 더군다나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는 공감력과, 이상을 위해 참는 인내력도 인간이 가진 훌륭한 '본성'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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