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용지물

시간만이 힙스터와 매니아를 가려준다

월급쟁이 단상

by 줄타기인생

힙스터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던게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2010년) 생각해보면 이 단어는 경탄의 의미에서 경멸의 의미로 참으로 빠르게 변해왔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힙하다 힙해' 라는 말은 세련되다, 선구적이다 라는 말과 동급이었으나, 지금 누군가에게 힙스터라는 말을 한다면 그의 취향이 얕고 일관성도 없으며 유행을 따라가느라 바쁘다는 말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진다.

힙스터를 싫어하는 인간이야말로 힙스터라는 정의가 있을 만큼, 힙스터는 복잡미묘한 존재지만, 결국 노력 없이 쉽고 빠르게 소비해서 티낼수 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게 힙스터라는 결론을 다시 떠올려본다. 예를 들자면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외국어로 힙스터가 되지는 않는다. 멋들어진 외국어 문구를 찾아서 찍어 올리는 거면 모를까. 운동으로 힙스터가 되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진입장벽이 높더라도 소비에 소요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면 힙스터의 아이템으로 활용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런 힙스터의 속성은 역설적으로 두가지 결론을 내게 만든다. 하나는 어떤 유행의 초반에는 아무도 힙스터를 판별할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소비사회에서 누구나 힙스터적인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최신의 어떤 유행을 받아들이고, 혹은 정말로 남들 안찾는 뭔가 특이한 취미를 찾아서 시작했을때 그가 힙스터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법은 그의 이전 행보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건 항상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98~99년에 힙스터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지금 떠올려 보면 하이텔,나우누리,천리안에 있는 소규모의 동아리 사람들 몇몇은 그야말로 힙스터의 속성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동아리도 그랬다. 그들은 남들이 관심도 없는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남들 모르는 취미를 하며 자신의 선구적 행동에 대해 뿌듯해 했다. 그러나 5년 정도가 지나자 그 중 누가 힙스터였고 누가 매니아였는지 드러났다. 힙스터들은 유행을 따라 빠져나갔고, 매니아는 지금까지도 남아 그 취미를 계속한다.

결국 시간만이 힙스터였는지, 매니아였는지, 선구자였는지를 판별해 줄 것이다. 마치 어떤 체인점 혹은 창업점들은 오래오래 남아서 그 지역에서 추억의 장소가 되었듯이 말이다. 물론 우리의 인식에 힙스터가 뭔가 나빠 보일 수는 있으나 그걸 나쁘다 좋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게다. 힙스터로서의 인생도 매우 즐거운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특히 시장의 모습이)이 항상 우리의 인생을 반영한다. 소비의 논리로 모든게 돌아가는 세상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그런 논리의 화신인 힙스터에게 어떤 염증을 느끼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이 인생에 반영된다는 같은 이유에서 수많은 창업이 절벽 끝으로 휩쓸려 가듯이, 우리들에게도 힙스터가 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나 매니아가 될 조건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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