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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10. 2018

친절함은 언제나 중요하다

내게 당연한 사실이 남에게는 아닐 수 있다는 걸 항상 생각하자.


  친구가 5.18을 모른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슨 답변을 해야 하나.

  요즘 SNS 콘텐츠에서 가장 핫하고 의미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쥐픽쳐스의 국범근 대표일텐데. 그의 인터뷰나 영상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중요 키워드는 '친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언론을 포함해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급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살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회사들의 등장이다. 퍼블리라던가, 북저널리즘 등이 이런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콘텐츠들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향과 지향이 명확해야 하고, 자신의 직업이나 지망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명확해 거기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콘텐츠는 타겟이 명확하다. 장벽이 높아도 괜찮다. ⓒ publy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뉴스도 자주보고 언론에 관심이 많은 시민인데 북저널리즘에서 뉴욕타임즈 혁신보고서 관련 책이 나왔다고?' '나 현대사 관심 많고, 마케팅 일 하는 사람인데 퍼블리에서 이번에 '인공지능 시대의 마케팅'하고 '외환위기 20주년 분석' 을 출간한다고? 그럼 사야지! ' 요컨대 이런 콘텐츠의 키워드가 친절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심도, 인사이트다. 다만 이 콘텐츠의 소비층은 한국이나 국외나 전체 인구비로 따지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세계, 어쩌면 대부분의 세계에는 국범근 대표가 말한 '십말이초'를 비롯해 더 친절하고 더 쉬운 지식. 그냥 지식도 아니고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건 어떤 사업모델의 이슈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이 민주화를 다루건 산업화를 다루건 화석화 되어있고, 언론이나 고급콘텐츠가 의도했건 안했건 진입장벽을 높이는 사이에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지식들을 정작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나 시스템은 점점 사라져가는 듯 보인다. 적어도 민주화가 생동감 넘치던 현실이던 90년대의 교육은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젊은 친구들에게 1987은 그저 30년 전의 이야기고 (1987년 기준으로 하면 1957년도다. 80학번들이 생각할때 1957이 감이 왔을까?) 1980은 ‘교과서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본 것 같긴 한데..시험 과목일 뿐’인 것은 아닌가.

1960년 4.19 혁명의 현장. 백번 양보해서 1987년 기준으로 1960년을 생각한다고 해보자...감 안올듯.

  근데 한국은 시민의 교양이나 역사 의식마저도 철저히 각개격파의 장이라서, 운이 좋아 집안 잘만나거나 선배,선생 잘 만나 '의식화' 된 사람들. 머리 좀 좋았던 사람들은 그럭저럭 지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티를 내면 비웃음을 사고 공격을 당한다. 바꿔말하면, 집에 돈이 좀 있고, 좀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부모가 중산층 이상이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 소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출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연예인이 뭔가 역사 상식 (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을 모른다던가, 시사에 무지한 모습을 보일 때 온갖 비웃음을 날리는 나를 포함한 그 수많은 대중들을 생각해보자. 지옥도가 따로 없다. 그렇게나 매력적인 서사를 가진 역사와 교양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개발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베의 직관적이고 강렬하며, 가짜 진실, 가짜 정의가 주는 쾌감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

  




  누군가가 나에게 5.18을 모른다고 했다면? 내가 '어떻게 5.18을 모를수가 있냐 어휴' 라고 할때 국범근 대표는 5.18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나는 그가 '5.18을 친구가 모른다고 할때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고, 광주를 설명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라고 했을때 너무너무 부끄러웠다.그리고 국범근의 '십말이초' 이거 저널리즘에서 항상 정언명령으로 삼던 것을 실현하고 있는 거 아닌가?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라' 라는 그 경구 말이다.

쥐픽쳐스에서는 1987에 대해서도 아주 친절하게 정리해놨다 ⓒ쥐픽쳐스


  우리가 생각하는 시민의 교양, 역사의 진실을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상대가 모른다고 가정하고 설명하는 노력. 이것은 그가 말했듯이 매우 중요한 시민교육이다. 그리고 좋은 시민이 될 기회란, 꼭 '십말이초'에만 있지 않다. 20대, 30대, 40대에도 계속 변화의 순간은 찾아온다. 지금 좀 다르게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태어날때부터 반골이나 민주주의나 페미니즘,사회주의를 달고 태어나는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교양과 윤리들은...사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의무사항이 아니다. 때문에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국범근 대표가 말한 '친절'이라는 미덕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역사의 진실을 모르거나, 응당 갖춰야 할 시민의 미덕을 모를때, 그래서 그들이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질문을 던지거나 '그게 무슨 사건인데?'라고 물어볼 때가 1년에 한두번은 꼭 온다. 그런 순간들에 나는 성실하고 친절하게 답을 했었나?

 

ⓒ5.18 기념재단


 국범근 대표의 강연을 보면서 내가 보였던 태도들을 되새겨 보게 된다. 나중에 그 질문들이 냉소를 위한 포석이었음이 밝혀질지라도 친절하고, 성실하게 답변할 준비를 우리는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질문하는 사람이 악의를 지녔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초반에라도 우리는 성실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작년에 나왔던 말들 중, 그 모든 맥락들을 다 이해하면서도 '모르면 공부하세요'라는 그 문장이 너무나도 끔찍히 싫었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데 공부를 어떻게 하나?! 공부는 내가 뭘 모르고 있으며, 당장 뭘 알아야 되는지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근데 그런 점들을 자발적으로 깨우치는 경우는 내가 보기에는 거의 없다. 숫자도 모르는데 사칙연산을 할 수 있나? 알파벳도 모르는데 영어문장을 어떻게 쓰나? 때문에 다른 가치를 이야기하고 그 가치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질문이 들어왔을 때 공부의 계기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이런 건 그냥 혼자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온라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내가 어딘가에 단 댓글을 보고 새로운 계기를 만든다. 그게 싫다면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어떤 지식을 갖고 있다는 상태와 그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을 잘 하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때문에 이번 새해에는 더 쉬운 말로, 친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부만큼이나, 친절한 답변을 할 수 있는 공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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