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용지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Jan 15. 2018

1987에서 한국전쟁을 생각하다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다'는 증오의 근원


 영화 <1987> 에서 정의로운 간수장으로 나온 실존인물 '안유'가 대구교도소장 보안과장 재직 시에는 고문을 통해 전향을 강요했다는 이야기. 전혀 몰랐던 사실이 주는 충격도 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드러내는 빨갱이 콤플렉스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변호인> 등의 영화들은 항상 주인공들과 피해자들이 '빨갱이'가 아님을 강조한다. '우리 아들 빨갱이 아니예요. 저 빨갱이 아니예요. 이 학생들이 어떻게 빨갱이입니까?' 1987에서는 서울대 나온 아들, 마음이 너무 아픈 연대생으로 나오는데, 나는 이게 일종의 간접화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빨갱이(괴물)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착한 사람들이라고.

사슴 눈을 한 이 청년이 어떻게 극악무도한 '빨갱이' 입니까? 영화 <변호인> 中

 사실 이런 패턴이 매번 반복이 되서 '왜 빨갱이라고 말을 못해!'라는 짜증과 더불어 정말 레드 콤플렉스의 뿌리가 깊다는 점을 실감하기도 한다. 이 기사가 그런 현실을 어느 정도 드러내기도 한다. '사회의 변화를 원하지만 빨갱이가 아닌 게 입증된 사람' 정도는 친절하게 대하고 도와주지만, '빨갱이'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때려잡아야 한다고 인식했다는 점에서 1987에 나온 주요 행위자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박처원과 안유의 차이는 범주의 차이일 뿐. 빨갱이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세계관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영화 속 검사나 언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최 검사가 뭐 사회변혁의 의지가 강력해서 그랬겠는가? 영화 <1987> 中

 그런 의미에서 극 중 박처원이 이야기하는 한국전쟁의 기억. 조금 더 엄밀히 말하면 한국전쟁 전 후로 진행됐던 상호 파괴의 기억이야말로 정말 한국사에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트라우마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어떤 이들은 너무 뻔하다고 비웃지만 한국사에서 그런 기억만큼 흔하고 뻔하지 않은 기억이 또 어딨겠는가.

 

 물론 박처원의 집안이 정말 악랄한 지주세력이었을 수는 있다. 요지는 박처원 같은 이들의 억울함이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오히려 정당한 집행이나 사상 차이 정도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극우파들이 자신을 '빨갱이에게 당한 피해자'로 포장했다는 점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그런 포장은 지금보다는 효과가 적었을 것이고, 전쟁을 기점으로 남북이 서로를 어떻게 취급하기 시작했는지 (빨갱이와 자본가) 생각해보면 한국전쟁의 깊은 상흔이 어떻게 이용되고, 악화됐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현재의 이슈이기도 하다.


 이게 극복되지 않는 한 빨갱이 콤플렉스, 더 나아가 사상의 자유라는 뻔한 가치의 달성은 요원하다. 21세기에도 한국에서 누군가가 누구를 '빨갱이'라고 욕하면, 사람들은 '빨갱이가 어때서!'라고 반응하기 보다는 '어떻게 그런 인신공격을' 이라고 대응하거나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라고 입증하고 민주주의 어쩌고 하는 영화마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외치는 것이 풍경인 세상에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절함은 언제나 중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