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호 <적당한 거리의 죽음>
주말에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코코>를 봤습니다.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이 죽음의 세계에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 '죽음'이라는 연령 불문하고 쉽지 않은 무거운 주제를 픽사 특유의 창의력과 디테일로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저도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제 곁을 떠난 분들. 그리고 언젠가는 찾아올 나 자신의 죽음...
사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겪게 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후를 알 수 없는 진짜 마지막이기에 두렵기만 합니다. 필연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죽음에 대한 생각을 미루고, 또 미루게 되죠. 그런데 이런 태도가 과연 건강한 삶일까요?
기세호의 <적당한 거리의 죽음>은 우리가 죽음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라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공간으로서 묘지를 제시합니다.
도시 속 묘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짚어보는 이 책은 죽음이 필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공간에서 죽음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묘지'가 왜 사라졌는지,왜 묘지가 우리 주변에 있어야 하는지 서울과 파리를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서울은 삶의 공간만이 가득한 반면, 파리는 가까운 거리에 묘지가 공공장소로서 존재하고 이를 통해 산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음을 되새기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죽음을 굳이 가까이하거나, 이를 숙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크게 와닿지 않는 내용이겠습니다. 심지어 인류가 200년 안에 죽음을 극복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세상이지요. 사실 근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죽음을 극복해나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행보가 위대한 것 또한 사실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실제로 극복될 수도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한다'라는 게, 어느 순간에는 그저 상상력 부족한 구 인류의 망상으로 치부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런 날이 내일 바로 오지는 않습니다. 그때까지는 삶과 죽음은 함께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평생 이별을 하며 살아갑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죽음에 대해 마음 한 구석을 열어놓아야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강건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그런 삶이 좀 더 좋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묘지라는 공간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책. <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덮으며 생각해봅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해 관심 있는 분
-유럽이나 일본에서 묘지가 공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으셨던 분들
-생각의 여지를 던져주지만 2~3일 내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얇은 텍스트를 찾는 분들
-애니메이션 <코코>를 재밌게 보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