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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18. 2018

늙음조차 평등하지 않다

마가릿 크룩생크 <나이듦을 배우다>

 생노병사의 고통이라는 말이 있죠. 병과 죽음이 고통인 것은 당연한데, 생이 고통인 것은 태어난 후에 늙고, 병들고,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노 (늙음)의 고통은 다소 결이 다른데요. 이는 다른 고통처럼 하나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이기에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지금 즐기고 있는 취미활동이나 사회생활을 나이 들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늙음의 고통을 다소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데 늙음이란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고통이자 퇴화이고, 때문에 어떻게든 늦춰야 하는 일인 걸까요?

 나이들면 모든게 퇴화한다는 통념과 다르게,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노인들이 종합적인 판단력이나 심사숙고에 있어서는 젊은이보다 뛰어나기도 하고, 육체능력도 유지,개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내적인 면에서도 노인도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에 '노인의 특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개별의 다양한 욕구와 지향이 있을텐데요. 한때 한국에서 노인 콜라텍 문화라던가, 노인 성생활을 다룬 기사나 작품이 나왔을 때 불거진 부정적 반응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노화에 대한 이미지가 지닌 편향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학자 마거릿 크룩생크가 지은 <나이듦을 배우다>는 노화란 사회적 개념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우리가 노화에 대해 가진 사회적 통념,편견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 책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열심히 관리해서 이겨내자!'의 다른 버젼인 것처럼 느껴질텐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노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 세가지를 수정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첫째, 자립적인 인간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는 관념입니다. 이 시대에 자립이란 제대로 된 성인이라면 당연히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뿌리깊은 윤리관은 노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노년이란 분명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늙어서도 파워 넘치고 정력적인 노인'의 상이 지나치게 강고하다는 겁니다. (모 보험회사가 광고에서 그리는 노년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이 결과 자립하지 못하는 노인과 지역공동체의 역할은 폄하되고 노인의 건강 악화나 복지제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불러오는 단초 중 하나가 됩니다.


둘째. 노화는 질병이라는 인식입니다. 저자는 노인인구가 당연히 젊은 인구보다는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병마에 습격당할 날만 기다리는 불운한 시기는 아니라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가져옵니다. 노화는 질병이라는 인식은 이를 퇴치하기 위한 안티에이징 시장의 팽창, 약물의 오남용을 불러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노화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박탈합니다.

셋째, 늙음은 평등하다는 생각입니다. 미국 내에서 노인 인구는 자신의 젠더 / 인종 / 계급 / 성적 지향에 따라 다양한 건강상태를 보입니다. 백인 노인보다는 흑인,라틴계,아시아계 노인이 건강상 위험에 빠질 확률은 높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더 존중받습니다. 남성 노인은 젊은 날 은퇴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모으고 안락한 은퇴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은 데 반해, 여성 노인은 노동의 기회나 보상이 적었고, 나이들어서도 더 자주 아프며, 대가없는 가사노동에 죽을때까지 노출됩니다.



  <나이듦을 배우다>는 이렇게 노화에 대한 사회학적/여성학적 분석과 함께 저자 나름의 대안들을 내놓습니다. 정책적으로는 복지제도의 확충과 세분화, 지역공동체의 기능 회복을. 읽는 이에게는 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학문적으로는 페미니즘에게 노화의 문제가 어째서 앞으로의 과제가 되야 하는지를 설파합니다. 노화의 가장 위협적인 순간은 노년 여성에게 더 자주 찾아옴에도 기존의 노년학은 남성 위주로 연구되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페미니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여성 노인에게 편안한 세상이라면, 모두에게 편한 세상이겠지요.

 책은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1:1로 적용하기에는 간극이 좀 있지만 우리가 노인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들을 바꿔주기엔 충분합니다. 저는 이 책이 노년의 다양한 가능성, 우리 삶의 연속성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할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페미니즘에 대한 근거없는 왜곡과 공격이 이어지는 요즘의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 폭 넓은 의제를 다루는 페미니즘 서적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노화가 주는 약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분들.

-건강한 노년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분들
-다양한 주제의 여성학을 접하고 싶은 분들

-세상이 너무 젊음만을 숭배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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