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Jan 23. 2018

어버이 연합 비긴즈

윤충로 <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 

  <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 는 베트남 전쟁 참전자들의 구술인터뷰를 기반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연결, 베트남전과 한국사회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학술서적입니다. 베트남 전쟁은 어떤 동기에서 이뤄졌는지, 실제 전쟁 전/중/후의 경험은 어땠는지. 한-베 수교 이후 베트남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뤄져왔고 왜 참전자들은 급격히 보수화됐는지 등을 개인 인터뷰들을 통해 살펴봅니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몇가지 사실을 새롭게, 혹은 다시 인식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전은 이념전쟁이기보다는 경제적인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 국가의 총동원은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았으며 개개인은 전쟁에 있어 다양한 동기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설명하는 참전자들의 보수화 원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후 참전자들과 사회가 전쟁의 의미와 경험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정리할 기회를 여러 방면에서 박탈하는데요, 그 결과 전쟁은 반공보수 / 경제성장의 범주 안에서만 멤돌다 화석화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90년대 민주화가 진행된 후, 한국군의 베트남전 학살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 전쟁의 재평가 등이 전면화 됩니다. 이런 흐름에 대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한 참전자들은 극렬히 반발했고 당시 베트남전 학살을 보도한 언론사를 습격하는 등의 촌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가 말하는 베트남 참전자들의 극우화 프로세스입니다.



 물론 이들은 자신이 고생한 경험이 곧 돈이 되는 실제적인 경험을 했고, 국가 또한 그러한 인식을 강요했기에 참전자들이 베트남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7-80년대 엄혹한 시기에 참전자들에게 아예 생각과 해소의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들의 극우화를 그저 그들의 무지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에서도 극우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꾸준히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요? 저자는 한국의 현대사가 전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요. 사는게 전쟁이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사회.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들은 '우린 종전이 아니라 휴전상태야' 라며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생각의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회 시스템에서 상처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은 여전히 불온시되고, 의심받습니다. 해소의 기회가 없으니 생각의 기회도 없습니다. 


 베트남 참전자에게 가해졌던 압박이 약간의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하게 현재 세상에도 존재합니다. 생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어버이연합이나, 고엽제 전우회 같은 사람들이 세대마다 나타나는 건 어찌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겠습니다. 가스통을 든 저 어르신들 중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늙음조차 평등하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