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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un 22. 2018

좋아 봐야 좋은 줄을 알지

태극기 노인과 직장인의 공통점

  내가 3월에 이직한 직장은 꽤 젊고, 조직원들의 의견을 중시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문화 중에 주간회의 때 진행되는 Q&A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는 대표와 인사팀이 직원들의 질문이나 요구사항에 성실하게 답을 하고, 해결책을 제안한다. 대기업의 수직구조에 익숙하지만, 그래도 나름 수평구조를 희망한다고 (착각했던) 나에게 이 시간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때 나오는 질문들이 내 꼰대력 수준에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간식코너에 신선한 과일이 부족하다.
-공사중에 세그웨이를 사용할 방법이 없는가 
(세그웨이 구비되어있음)
-출산휴가 중에 현재 제공되는 복지제도를 100% 보장해주는가
-실내에서 나오는 음악의 장르가 너무 적다.
-대표는 공유를 이야기하지만 공유가 제대로 안되는 거 같다
   

  처음에는 뭐 저런거까지 물어보나? 회사가 그냥 해주면 좋고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찬찬히 뜯어보니 다들 '내가 회사에서 일을 잘 하고,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이 조직은 같이 만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궁금하고 필요한 건 당연히 요구한다'라는 마인드가 박혀있었다. 특히 그런 질문을 잘 하는 직원들은 이 직장이 처음인 경우가 많다. 어떤 직원은 대기업 미팅을 다녀오더니 '사람들 얼굴이 다 불행해 보였다' 며 회사생활을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경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됐다. 

  왜냐면 나는 앞으로도 그들과 같이 질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회사란 어찌됐건 고통스러운 곳이고, 최대한 멀리해야 하는 곳이며, 언젠가는 나를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니까...내 안에는 6년간 경험한 수직구조가 자리잡아 있고, 그것을 떨치기는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란 남은 나와 다르게 생각할 것이며, 그런 질문들이 좋은 질문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왜 이 기사에 이런 장광설을 썼는가. 기사에서 노인들이 '청년들이 힘든 일을 안하려고 한다'고 투덜대는 모습이 마치 내가 그 자유로운 질문들을 낯설어하거나, '뭐 저런거까지?' 라고 생각하는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부분 약하고, 편협하기 때문에 좋은 환경을 겪지 못하면 그 안에 갇히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진다. 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 곧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의 전부였던 이들이다. 그들의 스스로의 삶에 대한 낮은 기대치는 곧 자신들과 기대치가 다른 젊은이들에 대한 비난이 된다. 

사회는 자기 자신의 품격을 위해서라도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어느 수준 이상 높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걸 겪어봐야 좋은 걸 기대하고, 이해할 수 있다. 노인들을 이렇게 만든 자들이 누군가. 이건 정말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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