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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31. 2018

한부모, 아동학대, 사회복지, 낙태.

한 대학생이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구조한 신생아라고 허위신고한 사건이 내내 이슈다. 나는 그 사건에 관한 기사에서 당사자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 막막하고 무서웠다'는 요지의 말을 한 걸 보고 어제 읽은 시사인 기사를 생각했다.

기사의 요지는,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은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으며, 정보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열악한 환경에 처한 가정이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이 분석 기사를 읽으면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특히 정보의 부족인데, 링크한 기사를 포함해 시사인 기사들 내용을 발췌하자면 아래와 같다.

권태훈 강원도 춘천 아동보호 전문기관 팀장은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와서 현장 조사를 나가보면 뱃속에 둘째가 있고 품에 첫째 아이를 안은 10대 엄마가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종종 만난다고 말했다. “‘술과 담배는 태아에게 위험하다’고 얘기하면 ‘아 진짜요?’라고 답한다. 어떻게 이런 걸 모를 수가 있나 싶은데, 그 친구들은 모른다. 어느 열아홉 살 엄마는 아이 기저귀가 무거워서 흘러내릴 정도인데 갈지 않기에 이야기했더니 ‘하루에 두 번만 갈면 되는 거잖아요’라고 하더라
김 대표는 청소년 부모들의 정보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어설픈 검색으로) 얻는 정보가 전부다. 영아 살해·매매·유기 등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단돈 10만원의 병원비가 없어서 그런 결정을 하기도 하는데, 지원받을 방법을 찾아보면 있다. 많은 어린 부모들이 그걸 모르고 또 찾지 못한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의 ‘베이비박스 지원 사업’은 물품 지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상담으로 이어진다. 주거 시설, 양육 환경 등 미혼모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고립’을 방지하는 효과다."

 경악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기사를 보고 '정보를 검색해서 찾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네이버나 구글에 정보를 검색하는 일 조차도 실상 고도의 추리와 문해력, 집중력을 요구한다. 왜 그 수많은 직장 상사들이 쉽게 찾는 정보를 부하직원에게 검색해보라고 시키겠는가? 왜 수많은 회사들이 빠른 접근에 목을 메겠는가? 엔간한 정보들은 한큐에 검색하면 나오는 세상에서, 실제 가치있는 정보들은 찾는 일은 나에게 해당하는 검색어를 유추하는 능력과 계속해서 검색을 반복하며 찾아가는 과정을 요구한다.


 당사자가 되기 전에 검색할 일이 없는 사회복지 정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어느날 덜컥 임신을 해서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한다면? 일반적으로 한국사회가 한부모를 대하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주변에 이를 알릴 수는 없다. 낙태를 할 수도 없다. 인터넷에서 무슨 검색어를 해야할지는 판단하기 어려운데, 유추해서 친 검색어 중 어떤 정보가 정확하고 도움되는지 판단할 능력은 갖기 어려운 능력이다. 사회적으로 압박받고 위축된 사람은 이런 정보를 검색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갖고있는 조건이라 생각하는 능력 조차도 결코 동일하게 주어진 게 아니다. 이런 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반복해서 찾아낼 수 있는 문해력? 검색력? 혹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의무교육의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생각은 기사에서 지적한 한부모 가정이나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열악한 가정에 대한 사회복지 지원 외에 낙태 합법화, 청소년 피임기구 보급, 성평등 교육 확대 등의 문제이다. 원치 않은 임신을 피하거나, 부모 모두가 힘든 상황을 감내하고서라도 아이를 책임지고 키울 수 있게 결심할 수 있는 모든 키 포인트가 이러한 정책들 속에 다 들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를 성적 도구로 보지 않는 성평등 교육을 전제로, 임신을 방지할 수 있는 교육과 기구의 보급, 만약 임신을 했을 경우 당사자가 원할 시 낙태할 수 있는 선택지 제공. 이 세가지가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아동학대의 실상과 오늘 뉴스가 됐던 대학생의 괴로움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더 크게 이야기한다면, 아이에 대해서 사회가 간섭할 수 있고 같이 키울 수 있는, 그러니까 육아를 부모의 책임으로만 두지 않는 분위기와 시스템도 필요하다.


 물론 많은 이들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가정을 꾸려간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런 의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을 개선은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 환경을 감내하라는 요구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한국사회는 고난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걸 무슨 대단한 벼슬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건 결코 자랑도, 권고할 만한 일도 아니다.


 가난과 고립 때문에 아동학대가 발생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개선하는 일이지 아동학대 가해자를 처벌하고 괴물화시키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오늘 뉴스에 나온 그 분은 가족의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이를 낳는 일이 두렵고, 알리기도 무서워 아이를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선택지를 택하게 되는 상황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혹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눈이 먼 것처럼 그 주변을 보지 않고 사건의 당사자를 욕하며 '나는 저 상황이라면 절대 안그래' 라거나 '나는 저 상황에 절대 빠지지 않아' 라는 확신에 빠져있다. 내게는 이 모든 풍경이 기괴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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