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용지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Jan 17. 2018

오늘은 또 무엇을 혐오할까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일군의 흐름을 보며

1. 

 페이스북에서 구독중인 Feminist in Seoul 이라는 페이지에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인상적이고 가슴아픈 이야기가 올라왔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화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인식한 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여성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면 많은 편견과 왜곡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게 잘 안된다는 고백이다.

 자신이 여성으로서 살겠다는 결심이 들면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부를 해 보니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됐을 때 이 분이 느꼈을 낙담이나 혼란은...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이 글은 우리를 옭아메고 있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우리 정체성이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이고 어려운 것인지, 타인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아주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서.  


2. 
 댓글을 잘 안보는 편인데 무심코 댓글을 열어보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댓글은 '퀴어 페미니즘은 형용모순이다, 한 번도 여성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데 무슨 여성 운운..'따위의 글과, 여성시대에 올라왔다는 '트랜스젠더는 허상이다'라는 글의 복사이다. 물론 훌륭한 식견을 보여준 분들도 많지만, 어디나 그렇듯 혐오표현은 가장 눈에 띄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만이 중요하고,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다른 정체성을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 타인의 오점을 그들의 정체성을 원인이라며 공격하는 자들. 너는 여성이니까, 남성이니까, 동양인이니까, 게이니까, 트랜스젠더니까, 너의 모든 게 다 허구고 문제야 라고 하는 이들.
 

 그들이 이 사회의 '한남'들과 무엇이 다른가? 얼마전부터 시작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일부의 공격은 내게는 그저 심각한 상상력 부족과 또 다른 혐오행동으로만 보인다. 남성으로 살다가 여성으로의 전환을 택한 이들은 여성일 수도, 여성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이들과 같은 논리로 이야기하자면,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전환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유지한 사람들 (그것이 이성애이건 동성애이건)이 이해할 방도는 없다.


3.
 그러나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고 상상할 수는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나 자신과 다르면 어떡하지? 그냥 꿈,장래 희망, 사회적 욕구. 이런 것이 달라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데 본질적인 나 자신이 그렇지 않다면, 그 스트레스는 정말 쉽지 않겠지-하는 식으로 우리는 유추나마 해 볼수는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여성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고 '김여사'를 운운하는 어느 저잣거리의 아저씨와 '남성을 등쳐먹는 여성'이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보다 나을 게 무엇인가. 내가 볼 때는 오히려 그들보다 이들이 더 인간에 해롭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척도 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다.


 뭐 그런 인식조차 기존의 남성사회가 우리를 짓밟았기 때문...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뭔가 현 상태를 바꿔보겠다고 한 이들이, 그래서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인간의 범위를 생각해보고, 불평등을 고민해본 이들이 할 소리는 아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공부 하고 오세요'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되는 이가 아니겠는가. 어떤 이가 자기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의 기준에 미달하면 설득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여지를 찾으면 된다. 근데 그러기는 너무 귀찮고 힘든 것인가?


4.
 비슷한 상황이 지금 트위터에서도 반복되서 일어난다. 그게 한때는 '똥꼬충'이고, 한때는 '밥도 못해먹는 늙은 한남'이고, 오늘은 '한남유충'이다.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모습들 보고 자란 남자애들이 어른 따라서 여성혐오를 내재화하고 행동한다는데 그게 '한남유충'이라는 거다.


 그래도 애들을 잘 교육시키고 설득해서 같이 갈 생각을 안하고 어린애한테 '한남유충'이라고 딱지 붙이는 건 심하다고 반박을 하면 '여자애들은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남자애들은 개복치라서 상처받냐?'라고 한다. 여자애들도 그렇게 되지 않게 하고 남자애들도 여성혐오 안하도록 하자는 말을 '왜? 남자애들은 쫄리냐?'라고 받아친다. 누군가는 내가 이런 걸 써놓은거 보고 아마 그럴 것이다 '한남들이 여자 후두려패는 건 왜 말 안하냐?' 한다. 


 개별 행위자의 가능성이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위계와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위계들은 전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별로 믿지도 않고 애정도 없는 이들이 세상의 개선을 얘기하면, 가뜩이나 개선을 믿지 않는 이들은 그를 빌미로 더더욱 냉소한다. 상상력 부족한 이들이 만드는 끝없는 냉소의 순환. 이런 광경 자체가 지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랜차이즈 카페만 없으면 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