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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Sep 21. 2018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그럼 돈을 내

입법안 쇼핑몰 <투정>에 대해 생각하다


공유한 광고를 진행하고 있는 <투정>이라는 회사는 '내 삶을 바꾸는 법안 쇼핑몰'이라는 컨셉을 내세운 곳이다. 사이트를 살펴보니 자신이 관심있는 이슈에 대한 굿즈를 구매하면, 그 비용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관련 법안 심사를 촉구하는 이메일 청원을 보내고, 관련해서 지하철 광고를 진행하는 식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나는 이 사이트를 보면서 진짜 어떤 기괴함을 느꼈는데...일전에 텀블벅에 올라온 수많은 사회단체의 굿즈를 보면서 '이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이쁜 굿즈와 펀딩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라는 좌절감을 느꼈을 때랑 비슷하다. 즉, 사회운동이라는 것도 이제 소비자가 아니면 진행할 수 없는 것인가-하는 답답함이 몰려오는 것이다. 적어도 텀블벅의 펀딩들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운동의 성과나 피해자들의 운동을 인정/지원하는 기반하에서 이뤄져왔다. 그러나 이 회사의 상품 속에는 그러한 부분들이 완벽히 사라져 있다. 


 이 회사의 광고를 두고 최태섭씨는 '모욕감이 드는 광고' , '소비는 아주 제한적인 행위인데 이를 정치행동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평가를 내렸으며 페친 몇분도 매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실제 이 회사 페이스북 게시물들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멋지다, 쿨하다, 같이 구매하자. 등의 호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기 때문에 나나 다른 이들이 느끼는 이 불쾌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태섭씨의 정확한 지적처럼 소비는 제한적이며, 결국 많건 적건 돈의 유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모든 정치/저항 행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실천하고 이뤄야 할 정치적 목표가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식의 사업들은 결국에는 참여라는 것을 돈을 내는 것 말고는 없도록 만든다. 사회이슈의 해결이라는 지난한 과제에 들어간 운동과 시간들을 구매라는 행위 안으로 모두 사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과연 나 같은 필부가 생각하는 사회변화란 것이 과연 충분한 상상력을 두고 펼쳐진 적 있었나. 이 상품들에 대한 반응이야말로 지금 우리 세상이 생각하는 참여니, 운동이니 하는 게 무엇인지를 너무나 명확히 잘 보여주고,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고 있는 건 아닌가. <투정>은 그것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회사일 뿐이다. '아프리카에 기부하는 신생아 모자 제작' 이라던가 '돈이 되는 000' 라는 구호, 소셜펀딩의 굿즈판매를 통해 참여를 유도하는 일련의 흐름들이 다 이런 걸 등장시키기 위한 예비과정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이슈에 관심은 있다. 참여의 통로는 없거나, 너무 어려워 보인다. 돈을 내면 이쁜 물건을 주고, 이를 실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 지원한다. 참여의 완벽한 상품화다.


나는 이 흐름이 결국은 메인이 될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음이 확인되면, 단체들은 좋건 싫건 이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먹었던 그 수많은 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뒤에 많은 운동들이 국민청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처럼....사회변화의 과정도 효율성과 즉각성을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 기존의 활동방식들이 설 자리가 있을까. 이 회사의 이름이 '투정' 인것도, 콘텐츠의 출연자가 '표창원'인 것도 너무나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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