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용지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Sep 27. 2018

당신들의 이름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을> 생각하며.

  창작이란 결국 사회의 지형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창작물을 보는 사람들 또한 그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일상까지 뒤흔드는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다룬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와 상관 없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작품에 이입하여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냥 공기중의 납 농도가 높아지면 우리의 건강이 부지불식 나빠지듯이 사회의 분위기도 그렇게 창작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라는 말은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나에게는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그런 작품인데, 사실 나는 이 작품을 돌풍이 지나고 한참 뒤인 올해 봄 쯤에 관람했다.


  사실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종종 챙겨는 봤으나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가 만드는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의 수동성이 내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내가 본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추억과 회고에 집중하지 이를 타개하기 위한 어떠한 방책도, 전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혹은 그런 상황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내게는 그 추억을 시각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느냐 하는 점에 몰두하는 것이 이 감독의 강점으로 느껴졌다.


 함께하고, 바꿔나가며, 행하며, 굳건히 서서 책임을 지는 어른의 이야기가 보고 싶은 나에게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이미지로 표현되지만 소설로 표현하자면 지루한 독백의 연속이자 퇴행적 사고일지도 모르는 장면의 연속은 전혀 와닿지 않았고. 더군다나 이런 스타일이 우리 시대의 특정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사실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도 세월호라는 현실의 사건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떠올렸고, 감독 스스로도 어느 정도 반영을 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으니 아예 무관한 감상이라 할 순 없겠다.

  우리의 현실이란 무엇인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잊혀졌지만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고 있으면, 이런 현실들이 영화 속 주인공의 고난과 겹쳐진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더 가혹하다. <너의 이름은> 속 주인공은 살아돌아왔고, 결국 이름을 기억하는 데 성공했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서 배를 꺼내고 수많은 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 304명의 이름. 당신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수 밖에.


  또 그게 어디 세월호 뿐이었을까. 쌍용차, KTX, 용산, 두산중공업, 파인텍, 제주도의 난민....이 사회에서 재앙은 일상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재앙의 생존자들에게 삶은 버티기엔 무겁고 버리기는 쉬워진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너의 이름은>이 보여주는 혜성의 재앙과 복구는 오히려 행복한 과정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 또한 그냥 편한 마음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재난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격리되고, 멈춘 시간에서 살아가다가 복귀하는 모습을 보기가 왜 그리 힘들었는지.



 <너의 이름은>이 가지고 있는 재앙과 기억이라는 테마. 한국이 겪고 있는 재앙같은 현실과 고군분투. 둘 사이에 이런 접점이 결국 이 작품과 공명한 이들이 많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을 테다. 신카이 마코토의 성공을 세카이계-주인공의 사소한 일상/로맨스가 세계의 운명과 직결되는-의 연장선상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업구조에서 찾는 분석들도 재밌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언제나 특정 콘텐츠가 공전의 히트라는 쓰나미를 기록할 때,  물 밑에서는 항상 그 쓰나미를 만들어낸 사회의 지형도가 반영되어 있는 법이니. 애석하게도 그것은 만드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많은 것들을 결정하곤 한다.


Radwimps - Sparkle

 영화가 개봉한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평을 쓰는 건 별 의미가 없겠다. 그냥 문득 음악을 듣다가 정리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썼다. 대통령이 바뀐 것으로 더 이상 기억할 이름이 없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이 세계에서, 재앙은 계속되고 있고 고군분투 하는 이들은 많으며,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또한 많을 것이라 생각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그럼 돈을 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