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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Sep 28. 2018

방송작가 수난시대

tbs 방송작가 비정규직화를 보며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처우상황을 다룬 기사. 3-4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나마 방송작가들과 일 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작가들 세계 내부에서의 성공공식이 너무 확고하게 자리잡혀 다른 대안들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작가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이 공식은 두가지가 있는데 드라마 작가로서 극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거나. 메인이 되서 한 프로그램당 높은 회차별 비용을 받으며 2-3개의 프로그램을 하는 (상대적) 고소득 프리랜서가 되는 것  . 그리고 그 정도가 되면 어느정도 협상력이 생기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도 제한적이라서 그냥 피디가 결정하면 별 수가 없다. 회당 3-400을 받아도 피디가 그만두라고 하면 당장 다음 일을 찾아야 하는 백수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모델이 작동할까? 메인작가를 보는 막내작가의 마음이란 게 무슨 직장인이 성공한 CEO 보듯 하는 그런 게 아니다. 막내부터 3-4년차 작가들은 자기가 나가는 일터의 동료가, 팀장이 그런 위치에서 자신들과 대비해 높은 소득을 벌고 있는 것을 매 순간 목격한다. 그러니까 나도 더 열심히 해서 입봉해서, 메인이 되서 저렇게 해야지...이 생각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다고 느꼈다. 판이 그렇게 짜여져 있으니 그리 생각 안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공공연하게 메인만 되도 작가생활은 너무 편하다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것도 사실 종편과 케이블의 폐해라면 폐해다. 무리한 방식으로 공영성을 파괴하면서 채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급하게 커진 시장을 채워야 할 인력 수요가 늘어났는데 처우는 나아지질 않는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지면 고용상황이 나아질 거란 이야기가 한국에서는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지 방송 시장을 보면 대충 감이 온다 (고 믿는다)

 여기에 방송작가는 프리랜서의 세계이고 업이 한정적이라는 특성이 발동해 개개인의 평판관리가 중요해진다. 그러니 돌발행동이나 집단행동을 하기 쉽지 않다. 나는 사람들이 안정적 뒷받침이 없이 개선을 시도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의는 지난하고 내가 참는 건 쉽다. 피디들은 자기가 신뢰하는 메인작가에게 작가팀 구성을 맡기곤 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눈 밖에 나면? 일거리가 줄어드는 혹독함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작가의 진입장벽이...그렇게 높지가 않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것이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다. 막내작가를 말 잘듣고 좀 똘똘한 친구를 뽑아다가 월급을 200도 안주고 (120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불과 몇년 전 이야기다.) 주당 60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구조가 된다. 막내작가 월급을 120에서 더 올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면 ‘그러면 그게 관행이 된다’라는 답변이 모범답안인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런 이들 개개인의 의식이나 실천을 탓하고 싶진 않다. 시장이 그렇게 형성된 판이니 개개인의 맘먹기 따위로는 개선이 불가능 하다는 걸 안다. 언제나 구조가 선행하는 법이고 이런 기반에서 중요한건 개개인의 선의를 따지는 게 아니다. 다만 이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초반 진입시의 사람값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고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진입장벽을 높이고 사람을 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부분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이 확대될 수록 해결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웹드라마나 커머셜 콘텐츠 작가들은 항상 필요하고, 작가 지망생들의 선택의 폭이 넓다면 사람은 귀해질 것이다. 단, 방송시장 확대 때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전에 처우개선의 사례가 명확해야 할 것이다. 다시 싼 값에 사람을 쓰지 않도록. 설득이 쉽지 않겠지만, 정규직화와 성공적인 노조 투쟁의 사례가 생겨 다른 방식의 성공모델이 안착하길 응원해본다   


 +) 근데 본문 중에서 한참 웃었던 내용. 새 프로그램마다 작가를 갈아야 하는 이유, 작가가 비정규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작가가 정규직이면 창의력이 떨어져서 그렇단다.그렇게 본다면 tbs는 피디들이 창의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인가? 왜냐면 내가 알기로 피디들은 대체로 1)본인이 했던 작가들과 또 하고 2)정규직도 많다. 이게 무슨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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