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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07. 2018

16년만의 만남, 씁쓸함만 남았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관람. 2002년에 학교 음악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봤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작품이다. 4,000회까지 진행 후, 몇년간 잠시 묻어두었다가 이번에 다시 재개막이 됐다.

당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제대로 본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묘사들이 10대 고등학생의 마음에 불을 지핀(...) 부분이 있었고, 사실 그런 면이 아직까지도 유효한지 궁금한 마음이 잔뜩 있었다.

  근데 막상 관람을 하고 보니 이래저래 씁쓸함만 남는다. 친구에게는 '고루해서 미쳐버리겠다' 라고 말했다. 생각을 해보니 결국 작품이 보여주는 모습과 현재의 괴리가 문제다. 우리가 그리스비극을 보면서 현재의 문제의식을 기대하진 않지만, <지하철 1호선>은 그런 작품이 아니니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작품이 다루는 98년으로부터 무려 2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지하철 1호선>의 주된 정서는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착하다'라는 정서일텐데. 이제 세상도, 관람객도 이 정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물론 세상은 항상 복잡하고, 사람 개개인의 선악은 자신의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런 걸 인정하면 세상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했던 시대이기도 했으니까.또, 작품 내에 녹아있는 기이한 지식인, 좀더 디테일하게는 운동권에 대한 우대라던가. '힘든 일을 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서 지식인을 사랑하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낭만화는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

  부유층에 대한 풍자의 수준도 지금 와서 보면 공감하기가 어렵다. <지하철 1호선>에서 부유층은 밍크코트를 입은 강남의 사모님으로 대표되는데, 이제 부유층이란 누가 봐도 추하고 탐욕스럽게 생긴 사람들이 아니라 누구나 따라하고 싶은, 성공하고 세련됐으며 자기개발에 미쳐있는 젊은 사업가, 예술가, 혁신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부의 재분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이런 후광에 가려 사라진다. 지금 시대에 나이 든 노인이 포장마차를 하고 있다면, '박스 줍는 거 안하고 자기 할 일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할 것이고. 노숙자는 점점 더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성판매 여성에 대해서는 '니가 명품백 살려고 한 일이잖아' 라고 하고 운동권에 대해서는 '취직도 못하는 게 씹선비질만 한다' 라고 할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지하철 1호선이 다루던 IMF시기의 시절보다 더 악화됐다. 사람들은 더 냉정해졌고, 세상도 더 복잡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20년전 창작된 극이 현재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길 바랐다면 너무 거창한 바람이었을까? 실제로 JTBC의 김민기씨 인터뷰를 보니, 이 작품에 대해 '기록물'로서만 인지하고 있고 새 시대의 문제는 다른 작품으로 다뤄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뮤지컬을 보는 내내 느꼈던 복고 컨셉의 술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은 허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연출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던 일에 대해서 왜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일이 될테다. 이래저래 아쉬움만 남긴 관람.


+) 고등학생 때의 관람 기억 중 하나는, 이 극에서 나오는 지하철 걸인 남매 장면에서 사람들이 대폭소하던 기억. 그 중 한 캐릭터가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인데, 관객들이 그걸 보며 엄청 웃어대서 너무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이번에는 그 장면에서 아무도 웃지 않았다. 물론 관객 대부분이 극을 보면서 계속 표정에 미동이 없기도 했지만...그런 점에선 좀 더 나아진 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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