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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14. 2018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어렵다.

<피에는 피>의 명료한 미덕

 개인적으로 북한 소재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한다. 얼마전 연재 종료한 <피에는 피>는 영화 <용의자>나 <베를린> 같이 북한 소재의 액션물이라는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북한의 공작원 백강수가 어떤 계기로 인해 북한 간부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통일 이후 이를 차근차근 실행해나가는 이야기다. 정말로 이게 다다. 그런데 이 웹툰은 다른 작품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빠르고, 명확하며, 캐릭터를 함부로 소비하거나 쉽게 도구화하지 않는다.

1. 빠르다
 주인공의 복수극은 정말 군더더기가 없다. 악당이나 주인공이 주절거리다가 기회를 놓치는 걸 획기적으로 개선한 영화 <의형제> 속 킬러 그림자보다 한층 더 효율적이다. 그림자가 말없이 그냥 총을 빵! 쏴버리는 킬러였다면 주인공은 말을 하면서 복수를 펼친다. 복수의 의미를 고민한다던가, 그런거 하나 없이 그냥 타겟을 정하고 -> 쳐들어가서 -> 자신이 당한 고통을 똑같이 돌려준 다음 -> 살해. 막판에 가면 주인공의 킬수가 (...)

보통은 저 말을 하고 고문을 하는데, 주인공은 말 하면서 고문을 한다...


2.명확하다
 인물들의 동기가 명확하고 애매하지 않다. 가족이 죽었으니까 복수한다. 체제가 불안정하고 잃을게 많으니 음모를 꾸며서 살 길을 찾는다. 사실 복수극이나 스릴러들이 '이 자식도 알고보면 좋은 놈이었어' 기믹이나 고민과 반전이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이 명쾌함이 유난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면도 있다. 영화 <테이큰>을 봤을 때의 그 시원함이랄까

진짜 전형적으로 나쁜 놈인데, 이런 나쁜 놈도 요즘 드물다.

 3.캐릭터의 소모가 없다.

 보통 이런 복수극들은 주인공의 유능함 + 악당의 악랄함을 과장하기 위해 주변인물들을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뻔한 흔적을 경찰이 놓친다던가, 당장 죽일 수 있는 걸 (....) 헛짓거리 하다가 역습당한다던가 하는 묘사가 없다. 독자 입장에서는 '저거 바보 아냐?'라고 가슴을 칠 일이 없고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생략되더라도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경찰 측 인물들도 충분히 유능하고, 악당들은 합리적으로 허술하다. 그 외 기관들 등장인물 (기자, 국정원) 등도 비록 심리적으로 안타까운 측면은 있지만 불합리하진 않다.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이 포위망 덕에 주인공 백강수의 의지가 더 강렬하게 돋보이게 된다.

유능한 경찰의 전형.

4. 수미일관
 1,2,3이 어우러지면서 나오는 결과물. 복수귀는 끝까지 복수귀이며 악당은 끝까지 악당. 특히 엔딩을 보면 이 미덕이 더 꽃을 피우는데, 극의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등장인물의 결말도 엄청나게 납득 가능하고, 깔끔하게 이뤄진다. 보통 작품이 이 정도까지 오면 뭔가 다른 엔딩을 고민하고, 또 그렇게 했다가 용두사미가 된 작품들이 한두개가 아닌데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수준의 개운한 엔딩으로 마무리까지 완벽.

 복수극으로서 갖춰야 할 미덕들은 사실 명료하지만, 막상 실현하려면 지난한 부분들이 많을테다  복수란게 워낙 슬픈 배경을 깔고 있다 보니 하고싶은 말도 많고, '복수가 정말 옳냐?'라는 질문에 나름 작품이 답을 내고 싶은 유혹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피에는 피>는 이런 고민들을 과감히 쳐내고 잘 할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다. 복수를 그저 할 뿐! 덕분에 보는 사람이 다음주를 충분히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으로 남았다. 다시 한번 '더하는 것보다 빼는게 어렵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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