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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04. 2020

광주 여행 택시에서.

19.12.22

    광주-화순-장흥을 도는 여행을 2박 3일로 짧게 다녀왔다. 짧은 여행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운주사의 불상들과 광주 민주광장으로 갈때 기사님과의 대화.

광주 토박이라는 기사님은 구수한 지역말로 광주의 좋은 점을 설명해주신다고 운을 떼시고는, 근 30분동안 이 지역의 정치인이 왜 문제인지. 광주의 발전은 왜이리 더딘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정치인들이 지역예산을 제대로 따오지 못한다는 것. 공항때문에 건축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 광주형 일자리의 연봉 가지고는 절대 젊은이들이 광주로 와서 살도록 설득할 수 없음을 토로하시다가 5.18 문제까지 흘러갔다.  


기사님은 '이제 제발 갈무리를 하고, 지나간 역사로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처단했어야 하면 처단을 했어야 하고. 못해서 사면했으면 결국 종료된 사건인데 왜 매 정권마다 이렇게 해야 하는지, 너무 지겹고 자신에게는 현재가 중요한데 이 문제로만 광주가 비춰지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기사님의 생각이 광주 일반의 인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조금 독특한 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발언들을 독특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나의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활인으로서 문제를 인식하는 기준은 얼마나 편협한가. '이 문제야말로 보편적이고, 필요한 문제야'라는 내 인식은 정말로 믿을만한 것인가? 아마 열에 여덟은 아닐 것이다.


문득 나는 광주에서의 국민의당 득표 당시 '광주가 배반했다'라고 분노했던 얼치기들과 홍준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당시 경남도민과, 성주 시위의 노인들을 비웃던 깨인 사람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비웃었지만 '지역구 의원은 최대한 줄이고 비례제를 늘려야 한다'라고 말해왔던 나의 인식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있을까.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는 항상 누군가에게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보편적 문제를 넘어서는 시급한 문제들은 세상에 항상 깔려있다. 계속해서 정체되는 지역을 바라보며 암담해하는 생활인들에게 민주나 자유 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지역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데 서툴다. 나는 특히 중앙정치의 이슈가 곧 생활의 이슈로 직결되기 쉬운 서울의 특정 소득,교육수준 이상의 사람들은 이런 부분이 정말로 취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비극은 그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나와 다른 이가 있다면, 그의 인식의 지평을 살펴봐야 한다는 원칙을 되새기는 것이 요즘의 시대에는 정말 더 힘들다. 맥락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우호적이지 않고, 어설픈 힐링물들은 은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냥 이해하지 말라' 라며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기라고 제시한다. 나는 내가 계속 믿었던 것들에 대해서 계속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것은 단순히 나 혼자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짧은 택시 속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이야기하는 세상보다도 그 분의 고민이 훨씬 더 절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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