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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05. 2020

긴 문장. 짧은 문장.

잘 읽히는 문장만이 좋은 문장일까.

 요 근래 '단문'의 작성에 대한 불만을 많이 접하게 됐다. 문장을 읽히기 쉽게 짧게 써야 한다는 방법론에 대해 글쓰기의 유형은 다양한데 왜 그런 스킬만이 강조되냐는 불만이다. 물론 세상에는 남을 설득할 목표가 없는 글쓰기도 많고. 모든 문장이 짧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분명히 어떤 부당함이 있다. 그러나 왜 이리도 다들 짧은 문장을 말하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글쓰기 교본을 소비하는 집단이 ‘남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이고 실제로 이들 대다수가 목적 달성을 위한 효율적 글쓰기에 목마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싶은 것이다. 일종의 산업디자인 같은 것일까.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던가. 나의 자아를 표현한다던가. 그런 목적이 더 컸다면 조금 다른 양상이었을수도 있겠다.


어쨌건 타인을 전제로 하고. 실용성을 목적으로 한 글은 단문위주의 짧은 글을 통한 구성이 맞다고 나는 믿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시간에 대한 존중 (그것만은 아니나)이 포함된 표현법이기도 하고. 단정한 문장들이 만들어낸 차분한 그림과 그 그림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이 제주도로 확대됐다. 계엄사령부는 김종필과 김대중을 연행하고 김영삼을 가택 연금했다. 광주 시민들만 저항했다. 많이 죽었다
-고나무 저,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중.  

그러나 이 문장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속 같은 사건을 지칭하는 문장보다 더 낫거나 더 아름답거나 한 것은 아니다. 둘 다 훌륭한 문장이다. 요컨대 핵심은 글쓰기에 목적이 있는가, 그것이 이야기건 설득이건.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거나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는 이가 어떤 기교를 택했는가. 마지막으로 그 목적은 의미가 있는가이다. 내가 쏘려고 하는 과녘이 명확한가?

 그런 근본이 이야기 되지 않고 짧은 문장은 지겹다. 긴 문장은 현학적이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기교의 평가에 불가하다. 직장인의 보고서에 쓰인 단박한 문장이 어떤 문학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고... 물론 내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글쓰기의 기초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면도 있다. 저널리즘에서 가르치는 글쓰기 대원칙 같은 것들은 고등학교 시절 쯤에는 좀 집중 훈련 시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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