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 19.12.18
요 근래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는 단연 나이브스 아웃. 극 초반에 유명 추리소설가 할런 트롬비와 그의 친구인 마르타 카브레라는 오목을 두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할런 : 나는 왜 널 이길 수 없지?
마르타 : 저는 승리보다 패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니까요.
'패턴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는 이 말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사실상 영화의 주제문이나 마찬가지다. 근데 계속되는 야근 후에 나 자신을 돌아보니...또 우리 삶도 그렇게 되는게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승리보다는 패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삶. 여기서 아름다움에 집중한다는 건 그게 무슨 이쁘고 좋은 존재들에만 집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옳음과 선한 영향력, 혹은 과정을 신경쓴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일 이뤄지는 내 일이라는 측면에서 들어가면 일의 부수적인 보상(지위상승, 입지확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일을 잘 되게 하는 데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싶기도 하고. 더 지엽적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의 동물적 감각적 습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떤 메세지를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이라는 말일수도 있고.
패턴을 생각하다보면 마케팅이라는 업무에 대해서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직무에 대해서는 참 많은 말이 있지만. 짧은 시간 내가 이 일을 하고 내린 직무정의는. 그냥 일이 잘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케터에게는 자신의 창작물이 없다. 자신의 자산이 없다. 그냥 일수도장 찍듯 유관부서를 괴롭히고, 재촉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계획을 운영해야 한다. 필요할땐 현수막도 직접 만들고, 배너도 다 만들고, A부터 Z까지 모든 걸 다 해야 하기도 한다. 마케터란 제네럴리스트의 대명사가 아닐까.
불분명한, 그렇기 때문에 한없이 자기를 포장하고 기만하고, 승리라는 미명하에 남을 괴롭히기 쉬운 이 업무를 하면서 패턴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 직무에는 왜 이렇게 사짜가 많은 것인지) 그리고 그 문장을 듣고 깨달았는데, 나는 항상 회사에서 승리보다 패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정말로 자기 인생의 일잘러였기 때문에.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여 패턴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이들은 밀려나고, 승리에 집중하는 이들을 그들이 이길 방법은 요원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두가지를 다 이뤄내고 싶다는 강한 욕심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