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기억의 조각들
나이 들면 꽃만 보여
배우 윤여정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왜 이렇게 꽃만 보이는 걸까.
올해 봄에는 유독 꽃 사진을 많이 찍었다.
집 근처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고
하루는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산책하며
골목길 단독주택 담장 너머로 핀 꽃 사진을 담았다.
너무 억지로 모아두거나 화려하게 꾸며놓은 꽃보다는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소탈한 꽃들이 더 좋아진다.
2021년 봄에 마주한 꽃들을 잊고 싶지 않아
그 기억의 조각들을 여기에 모아두려고 한다.
덕수궁 석어당 앞에 있는 살구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만개한 모습을 본 건 이번 봄이 처음이었다.
덕수궁 입구에 핀 개나리꽃.
작고 노란 꽃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집 앞 치과 건물 근처에 핀 매화나무.
우리 동네에서 매년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부지런한 나무다.
외근 중에 길을 가다 삼청동 카페 앞에
예쁜 화분이 놓여있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방울 기리시마 철쭉이라고 한다.
오래된 빌라의 돌담 너머로
앵두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건물은 나이 들어 쇠잔해졌지만
그 주변에 찾아온 계절은 여전히 찬란했다.
매일이 즐겁고 화창하기만 할 순 없는 거니까,
그냥 조금 차분한 서울의 봄을 담고 싶은 날이었다.
벚꽃보다 라일락을 더 좋아한다.
길을 걷다 불어오는 그 향기를 맡으면
어렸을 때 살았던 단독주택 대문 옆
작은 라일락 나무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라일락의 꽃말도 '젊은 날의 추억'이다.
좁은 골목길 화단에 핀 앵두나무 꽃
꽃이 없을 것 같은 골목이었는데 반가웠다.
집 근처에 핀 수양벚나무가 예뻐 이틀을 찾아가 봤다.
하루는 흐리고 하루는 맑았는데
흐린 날의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푸른 하늘을 뒤로한 벚꽃을 점점 보기 어려워진다.
입구에 이런 벚나무가 하나씩 서있으면
근처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흐드러지게 핀 귀룽나무 꽃
멀리서 보고 아카시아꽃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동네 뒷산에 핀 겹벚꽃이 소복하니 보기 좋았다.
꽃말을 찾아보니 '단아함 그리고 정숙'인데 잘 어울렸다.
오랜만에 종묘를 찾았다.
정전 남문 근처에 때죽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종묘 영녕전 동문 밖 전사청터에 핀 작고 하얀 꽃
이 꽃은 이름을 모르는데 좀 더 검색을 해봐야 될 것 같다.
집 앞에 핀 말발도리 꽃
꽃 이름이 뭘까 참 궁금했는데 동생이 알려주었다.
집 앞에 장미가 예뻐 며칠을 가서 보았다.
정말이지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다.
비가 내리는 날은 꽃과 잎의 색이 짙어진다.
비를 맞으니 꽃이 더 싱그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