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DEOK ROYAL PALACE / AUTUMN
나는 강북이 좋다. 강남에 집을 갖고 살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지도 않거니와, 그래도 아직까지 서울의 옛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는 강북 쪽에 더 애착이 간다. 특히 서울의 4대 궁궐이 집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든다. 집에서 나와 역까지 조금 걸어가서 지하철 3호선을 타면 20분 만에 안국역에 도착할 수 있다.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면 창덕궁 돈화문 앞이다. 사진을 찍다가 매력적인 장소를 만나면 그 주변에 아예 거처를 마련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작업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창덕궁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작년 일년간 꾸준히 담을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날은 오후에 점심을 먹고 창덕궁을 찾았다. 매표소에서 물어보니 후원은 이미 입장이 마감되었다기에 궁궐 전각만 관람하는 티켓을 구매해서 들어갔다. 추석이 가까워져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북적이지 않았다. 얼마전 비가 와서 그런지 금천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영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진선문 쪽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한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가는 순간 셔텨를 눌렀는데 평소에 담았던 금천교 사진들보다 포인트가 명확해져서 훨씬 만족스러웠다. 사람이 없는 풍경을 담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고 그것마저도 안되면 장노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년에는 인물이 프레임 안에 풍경과 함께 담기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덕궁은 이제 정말 인기있는 관광명소가 된 것 같다.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내국인들까지 즐겨찾는 곳이 되면서 예전처럼 조용하게 풍경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이렇게 많아지는 현상은 참 바람직하다고 본다. 친구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고궁에 나들이를 나온 학생들을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과 문화유산이란 그렇게 관심속에서 소리없이 이어지고 지켜지는게 아닐까 싶다.
이제 곧 10월이면 단풍이 시작된다. 올해는 후원 자유관람 기간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역대 최장기간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후원을 자유롭게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고 싶었던 사진작가들에겐 희소식이다. 나도 올해는 작년과 다른 시선으로 창덕궁의 가을 풍경을 담아보고 싶다. 10월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