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BOK ROYAL PALACE / SPRING
생각해보면 작년 한 해 동안 창덕궁을 거의 매주 가면서도 바로 옆의 경복궁은 그다지 자주 찾아가질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찾아가지 못한 게 아니라 않았다. 창덕궁 하나에만 집중하기에도 부족한 실력이다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 두 곳을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다는 게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창덕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어 하나씩 찾아내고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창덕궁을 다니면서 경복궁도 같이 작업을 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왠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본래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변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눈에 담고 기록을 남겨두는 게 훗날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한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이다. 북으로 백악산(지금의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진 한양(서울)의 중심이었다. 이후 확장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되고 말았다. 그 후 경복궁은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1867년에 이르러서야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중건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이 정무를 보던 외전과 관청들, 왕족과 궁인들의 생활을 위한 내전과 건물들, 휴식을 위한 정원 시설들을 조성했다. 또한 왕비의 중국, 세자의 동궁, 고종이 세운 건청궁 등 크고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들어선 궁궐 복합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권의 상징이었던 경복궁은 일제강점기 때 계획적으로 훼손되었다. 1911년에 경복궁 부지의 소유권은 조선총독부로 넘어갔으며,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주요 전각 몇 채를 제외하고 90% 이상의 전각이 헐렸다. 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일제는 경복궁을 본격적으로 파괴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했으며, 2010년에는 광화문이 원형복원되었다. <경복궁 가이드북, 문화재청>
몇 번을 읽어도 속상한 경복궁에 대한 소개글이다. 우리는 왜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경복궁을 지키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그 웅장한 궁궐이 서울 한복판에 남아있다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얼마나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을까. 지나간 과거를 탓하는 건 참 덧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과거의 유산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소홀했던 현대의 사람들에게 지금 남아있는 경복궁이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다.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울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경복궁의 봄을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경복궁은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경회루 주변에는 버드나무에 신록이 돋아나고 곧 있으면 수양벚나무에 벚꽃이 피어난다. 국립현충원의 수양벚꽃만큼 높고 크지 않지만 낮고 아담해서 더 친근한 느낌이다. 아쉽게도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는 벚꽃이 피기 전이었다.
경복궁에서 정말 아름다운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영추문과 건춘문이다. 두 문다 궁궐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데 이 시기에 영추문 근처에는 수수꽃다리 꽃과 황매화가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건춘문 앞에는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가을에 특히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경복궁에 자주 가본 사람들도 잘 모르는 포토 스폿이다.
영추문을 지나 경회루를 오른편에 두고 걸어가는 길이 산책하기에 참 좋다. 가다 보면 여러 가지 꽃을 볼 수 있는데 그중 군데군데 피어있는 복사꽃이 인상적이었다. 벚꽃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왠지 단아하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인디언 핑크 같은 느낌의 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경회루를 지나 좀 걷다 보면 보물 제 1761호인 향원정을 볼 수 있다.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다. 주변에 신록이 가득한 향원지 위에 분홍색 진달래와 철쭉과 함께 아름답게 떠있는 향원정을 보면 봄이 곁에 왔음을 느낄 수 있다. 한참을 앉아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경복궁 봄의 절정은 왕비의 후원, 바로 아미산이다. 교태전 뒤쪽에 마련된 이 아름다운 공간은 궁 안에서 답답함을 느꼈을 왕비를 위해 만들어진 정원이다. 계단식 화단과 땅 밑으로 연기 길을 내어 후원으로 뽑아낸 굴뚝(보물 제 811호)이 아름답다.
아미산은 교태전 일곽 뒤뜰에 경회루의 연못을 판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산(假山)이다. 아미산에는 두벌대의 장대석 석축이 네 층으로 쌓였고, 그 위에 괴상하게 생긴 돌을 담은 석분(石盆)과 물을 담는 돌그릇(石池) 등 석조물이 배치되었는데, 수석 1기는 1단에, 석분·석지는 1단·2단·3단에 있고, 굴뚝은 3단에 있다. 굴뚝 3기는 3단에 나란히 있고, 나머지 한 기는 동쪽 조금 뒤편에 있으며, 주위에는 화초들이 심어져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4기의 육각형 평면을 한 굴뚝들이다. 굴뚝들은 화강석 지대석 위에 벽돌로 30단 또는 31단으로 쌓였고, 육각의 각 면에는 당초무늬·학·박쥐·봉황·나티·소나무·매화·대나무·국화·불로초·바위·새·사슴·나비·해태·불가사리 등의 무늬가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각 무늬는 조형전(造形塼)을 구워 배열하였고, 그 사이에는 회(灰)를 발라 화면을 구성하였다.
육각의 각 면은 네 가지 종류의 무늬로 구성되었는데, 굴뚝 제일 아랫부분은 벽사상으로 불가사리를 부조한 사각형의 벽돌을 끼웠고, 그 위의 직사각형 회벽에 십장생·사군자 또는 만자문(卍字文)을 조각했으며, 그 위에 다시 봉황과 귀면 등이 부조된 네모 반듯한 벽돌을 끼웠고, 윗부분은 회벽에 당초문(唐草文)으로 구성하였다.
이들 무늬 위로는 목조 건축물의 소로와 창방·첨차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기와지붕을 이었으며, 정상부에는 점토로 만든 연가(煙家)를 각 4기씩 두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기능은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이지만, 그 형태나 위치가 정원과 어우러져 뛰어난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위키백과>
경복궁의 봄은 정말 아름답다. 봄 한가운데서 경복궁을 거닐다 보면 만물이 생동하는 따뜻한 기운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생각하며 궁궐을 지은 선조들의 지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지난봄에 경복궁의 봄을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봄날은 갔지만 다시 온다. 내년 봄에는 조금 더 부지런하게 봄을 만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