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DEOK ROYAL PALACE / TREE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후배가 얼마 전 페이스북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긴 유학생활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느리게 걷기'를 택한 후배가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왠지 중간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드는 요즘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오늘은 휴일이었다. 나 또한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몸은 피곤했지만 가까운 창덕궁에 산책을 다녀왔다. 평소처럼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다. 대신 궁을 천천히 걸으며 곳곳에 있는 나무와 숲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선정전 앞에 홀로 서 있는 멋진 소나무를 한참 동안 지켜봤다. 희정당 앞쪽 정원에 모여있는 소나무 숲에서 떨어져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왠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누군가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봤을 때 후회가 남지는 않을지.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떠올리는 공통의 고민거리가 아닐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찾아오는 여행객을 분석해보니 유독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해외여행의 유행과 트렌드에 의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빠른 경제성장과 사회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극심한 경쟁과 앞으로만 달려가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속도를 늦추고 지나온 인생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적어도 요즘의 나는 그런 것 같다.
스페인까지 가는 비행기도 미리 예약을 하면 순례자의 길을 걷는 데는 생각보다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1년 정도 시간을 내서 느리게 조금씩 뚜벅뚜벅 걷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욱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