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YEOMDO / SPRING
일이 조금 바쁘다 싶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단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 창 밖에는 조용히 눈이 쌓이고 있다. 이번 가을은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지나갔고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계절은 돌고 돌아 내년에 또 만날 거라 하지만 인생에서 똑같은 시간은 절대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나간 가을이 사뭇 아쉽다.
얼마 전 집 안에서 발을 헛디뎌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졌다. 이렇게 뼈가 부러진 적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는데 병원에 가보니 최소 한 달 정도는 깁스를 하게 되었다. 아마 새해는 붕대를 감은 발로 맞이하게 될 것 같다. 발가락 하나를 다쳤는데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발로 사진기를 들고나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것 같아 당분간 욕심을 버리고 몸을 추스르는데 전념하기로 했다. 그나마 아기가 잘 때 짬을 내서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꺼내어보는 게 요즘 내 소소한 즐거움이다.
라이트룸 카탈로그를 넘겨보다가 2015년 4월에 담은 운염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처럼 주제를 정해서 사진을 찍기 전이었고 새로 카메라를 장만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많이 들떠있을 때였다. 뭘 찍으면 좋을지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국적인 풍경을 보게 되었고 어딘지 무작정 찾아가 본 게 바로 운염도였다. 운염도는 인천 영종대교 남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향후 해양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이라고 해서 섬 주변이 간석지로 매립되었고 내가 찾아갔을 당시에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운전해서 가는 길이 불편했지만 도착해보니 메말라 갈라진 땅이 보여주는 텍스쳐와 패턴이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듬성듬성 남아있는 칠면초는 왠지 사막에 굴러다니는 덤불 같은 느낌이라 땅과 식물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이고 약간은 초현실적인 느낌이 마냥 좋았다. 한창 꽃이 피는 봄이었지만 이곳만큼은 아직 겨울이 채 지나지 않은 사막의 밤이 영원할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날동안 다시 가보지 않아 지금은 운염도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다. 계속되는 개발로 내가 본 이 풍경들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긴 이 공간을 지금 다시 찾아가더라도 그때와 같은 시간을 또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오늘도 한 장의 사진을 남기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