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trumpet creeper of Bukchon/Summer
최근에 여름의 신록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는데 며칠 전부터 화사한 꽃이 그리워졌다. 집 근처의 장미도 말라서 떨어지고 배롱나무는 아직 이른 시기인데, 무슨 꽃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퍼뜩 능소화가 떠올랐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대구의 남평문씨본리세거지 같은 장소도 있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먼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서울에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삼청동의 윤보선길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처럼 토담은 아니지만 오래된 한옥의 돌담과 능소화가 어우러진 운치 있는 풍경을 가까이에서 만끽할 수 있다.
능소화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뜻이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양반들이 아주 좋아해서 '양반꽃'이라고도 했으며, 평민들은 이 나무를 함부로 심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사찰 담장이나 가정집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관상수가 되었다. <다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꽃은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핀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거의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이어간다. <다음 '우리 나무의 세계'>
삼청동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린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빛이 부드러워서 편하게 사진을 찍기에 좋았다. 마치 하늘에 있는 거대한 소프트박스를 활용해서 사진을 찍는 기분이랄까. 배경이 깔끔하게 정리되니 능소화의 색과 모양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윤보선가와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유명한 떡볶이집 앞에 능소화가 활짝 피어 있어서 두 곳을 오가며 즐겁게 촬영했다. 떡볶이집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행운도 있었다.
북촌에 한번 더 다녀왔다. 그냥 삼청동 윤보선길에서 시작해서 능소화가 눈에 들어오는 대로, 왠지 능소화가 있을 것만 같은 골목으로 걸음 가는 대로 산책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몰랐던 골목 사이사이에 숨겨진 예쁜 능소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치 숨겨진 여름의 보석을 발견하는 기분. 6월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