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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Mar 23. 2016

문득 내 나이가 느껴질 때

서른 넷, 잔치는 예전에 끝났다

1983년에 태어났다. 돼지띠다. 만 32세,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서른네 살. 이립이 지났으나 이 세상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설설 기며 지낸다. 불혹을 맞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삿된 소리에 홀리고 정신 못 차린다. 내가 어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면, 어른이 되려면 얼마나 나이를 더 먹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백세인생을 사는 시대인데 3분의 1 정도 지났다고 세월, 나이 운운하는 게 민망하다. 하지만 문득 내 나이가 그리 적지 않구나 하고 느 때가 있다. 어릴 적 겪은 일을 회상할 때, 예전에 좋아했던 스포츠 스타의 요즘 모습을 볼 때 감회에 젖는다.


내가 지닌 기억의 맨 앞에는 어릴 적 엄마 등에 업혀 서커스 구경을 갔던 일이 자리한다. 서너 살 때였을 것이다. 형은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유랑 서커스단이 와서 임시천막을 세웠다. 엄마는 공연을 보고 싶어서 우리 형제를 데리고 표까지 끊어 입장했다. 그런데 형과 내가 무섭다며 울부짖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두컴컴한 공연장, 괴이한 조형물이 너무 무서워 엄마 등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트라우마나 공포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30년 전, 작은 동네에 유랑 서커스단이 왔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의 이 기억이 마치 남의 나라 옛날 동화 같다. 스마트폰을 쓰고 인터넷으로 전세계인과 대화하는 시대를 사는 내가 유랑 서커스단이 세운 임시천막에 들어간 경험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릴 적 좋아한 운동선수들이 이제 감독이 되었다. 양복 정장을 입고 코트나 그라운드 옆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산소 같은 남자, 연세대 농구단 이상민은 삼성 썬더스 감독이 되었다. 선수시절에도 유명했는데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옛 팬들 덕분에 현역선수보다 오히려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성균관대 배구선수 김상우는 우리카드 감독이 되었다. 외모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꽃중년 소리를 듣는다. 그라운드를 휘젓던 축구선수 서정원, 신태용 의 현역 시절이 눈에 선한데 다들 감독이 되었다.

날마다 거울로 보는 내 얼굴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시계시침처럼 변한다. 진북을 향했던 시침이 어느덧 서남쪽을 가리킨다. 문득 내 나이를 느낀다. 예수가 공생활을 마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부활한 나이만큼 살았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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