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맵고, 그런데 달콤해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퇴사 후 4개월 만이다. 익숙하게 손톱을 세워 비닐을 찢고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린다. 주황색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무젓가락으로 흰 밥을 집어 든다. 편의점 도시락에는 왜 숟가락이 붙어 있지 않을까 궁금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정성 없이 지어진 밥은 젓가락으로 뜨기 쉽다는 걸, 이제는 안다.
편의점 기업에 다니던 지난 2년간, 도시락은 좋으나 싫으나 주식에 가까웠다. 유통기한을 두어 시간 넘긴 도시락을 데우지도 않고 입에 욱여넣던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쩌면 불행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어느 날엔가, 나는 도시락으로 존재가치를 증명 받는 사람이 되었다.
점주님, 신상품 도시락인데 우리 2개만 더 발주해요. 수진씨, 폐기 나면 다 내 손해인 거 알잖아. 가파르게 떨어지는 매출에 살려달라고 울던 점주. 그 앞에서 도시락 더 넣으라고 빌던 나. 점주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도 이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무덥던 여름, 연희동 길가에 주저앉아 울던 기억. 도망쳐야 한다고 몇 번이고 되뇌던 날들.
한 젓가락 더 입에 넣는다. 자극적이고 달콤한 맛. 다른 기억들이 떠오른다.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겠냐며 점주가 건네던 갓 구운 빵 한 봉지,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던 박카스 한 병. 도시락 배달 가던 날, 스타렉스에 짐을 싣고는 담배 피우는 선배들을 기다릴 때, 팀장님이 몰래 건네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그 상냥한 손들.
지난 연애를 생각하면 늘 아픈 기억보다 다정한 기억이 떠오른다. 퇴사가 연애와 꼭 닮았다. 우울증 약을 털어 넣고도 견딜 수 없던 수십 번의 밤보다 찰나의 온기가 더 기억나는 게 그렇다. 고작 4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겠다던 이 도시락이 조금은 맛이 있는 것도 같아서. 참 우습고도 슬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