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가의 끝에 얻은 망상
3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느끼는 상실감과 절망감은 늘 비슷하다. 코타키나발루에 친구와 다녀왔고, 듣던 대로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백팩커스 호스텔이 가득한 거리에 즐비한 타투샵, 환전소, 힙한 분위기의 카페들. 스피드보트 타고 조금만 들어가면 보이는 초록빛 바다. 한 여름밤의 꿈만 같구먼.
코타 카페거리에 있는 젤라또 가게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여자를 봤다. 현지인이 아닌 듯했고, 여행객이라기에는 보다 그 공기에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친구와 수다 떠는 와중에도 흘깃 눈길이 갔다. 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란 저런 것인가.
원할 때 일하고 여행 다니는 삶처럼 보인다. 나도 어떤 환상이 있던 것도 같다. 개발자가 되었어야 했다, 디자인을 할 줄 알아야 했다, 혹은 내가 영어를 무지 잘했더라면.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힘든 때도 있었다. 나는 기술도 없고 언어도 잘 못해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없구나 생각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자학적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치앙마이에서 여행자들을 보며 글을 쓰는 나를 꿈꾼다. 그런데 그 꿈이(망상이) 현실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방향을 모르겠다. 사실,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고 계획하는 삶이 지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면, 무엇이 내게 필요할까. 내 무기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
유튜브를 만들어야지, 생각한다. 여기 관두면 난 조금 더 유연한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대기업만 다녀온 내게 스타트업 기업들은 어떤 미지의 세상 같다. 글을 아주 많이 자주 써야지 결심하곤 한다. 전화영어를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오늘 오전에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렇듯 하나하나 해내다 보면 코타의 그 카페에서 흘깃 보던 그 여자가 내가 될까. 무엇부터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