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이별한 날
이별이 가까워옴을 알았다. 취업을 하고 나는 바빠졌고, 바빠졌다는 핑계로 마음도 멀어졌다. 마음이 멀어지게끔 일부러 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는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우리 집 앞까지 와서는 나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갔다. 큰 꽃다발을 선물했고, 내게 어울릴 것 같다는 향수도 주었다. 인터넷에 '20대 여자 향수 BEST'를 몇 번이고 검색했다며 말갛게 웃었다. 그쯤에 나는 이미 마음이 많이 떠나 있었다. P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조만간 P와 헤어질 거지만, 앞으로 살면서 P보다 나를 사랑해줄 남자를 또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내심 생각했다.
의정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는데, 버스를 타고 의정부역까지 나와 1호선을 타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어느 춥던 날 그 의정부역에서 P와 헤어졌다. 하루 종일 카톡 답장을 안 하고는 퇴근길에 P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 나 너무 바쁘고, 이제 너를 더 이상 안 사랑하는 것 같아.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P는 울지 않았다.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라고 했다. 나는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후련했다.
몇 달이 지나도 그때 그 전화 너머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나는 너무 후회했다. 이별을 후회했고, 이별의 방식을 후회했다. 보다 강도가 심했던 건 후자였다. 그때 만나서 헤어질걸. 전화로 헤어지는 건 예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마지막 얼굴을 한번 못 본 게 그렇게 후회가 되어서. 얼굴 보고 마지막 표정도 보고 그렇게 헤어질걸. P는 내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진짜 헤어진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완전한 이별이 오지 않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그러던데, 얼굴은 잊어도 목소리가 안 잊힌다고. 딱 내가 그랬다. 귓가에 그 전화 목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그러고는 또 몇 달, 처음으로 꿈에 P가 나왔다. 헤어질 때 하고 싶었을 그 말들을 P가 했다. 네가 너무 밉다고,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랬냐고. 너는 천하의 나쁜 년이고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고. P가 엉엉 울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한참을 울었다. 비로소 우리가 헤어진 것 같아서. 이별할 때 못 본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꿈에 나오나 싶어서. 아침이 밝자 P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꿈에 오빠가 나왔어, 이제 우리가 헤어졌나 봐. P는 나를 달래며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건강하라고, 일 때문에 몸 상하지 말라고. 나는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어서 목소리를 짜내고 짜냈다. 지난 2년간 고마웠다고. 6개월이나 걸린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