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맨투맨을 입고 서있던 네가 기억나

P와의 기억 1

by 이마치


작년 초, 헤어지기 한두 달 전에 지하철에서 기절했다. 동행하고 있던 후배가 있어서 다행히 집까지 택시 타곤 무사히 귀가했던 기억. 강남 어딘가에서 업무를 보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퇴근시간과 겹쳐서인지 지하철이 만차였다.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한가 싶더니 눈을 뜨니까 충무로역 플랫폼 의자 위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내 공황장애의 시작이었던 것도 같다. 중학교 때 헌혈하곤 땡볕에 걷던 날 이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너무 당황했다. 눈을 뜨자마자 코피가 쏟아졌고, 화장실로 뛰어가 먹은 것도 없는 속을 게워냈다. 택시를 잡으며 P에서 전화를 걸어 나 지하철에서 쓰러졌다며 웅얼댔다.


후배가 데려다준 덕에 집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후배는 내가 탔던 택시를 도로 타고 돌아갔다. 아파트 입구로 터덜터덜 걷는데 P가 보였다. 주차장에 팔 벌리고 서 있던 너. 슬며시 눈물이 나서 뛰어가서 안겼더랬다. 전화를 하면서 뛰쳐나와 일산에서 우리 집까지 운전을 하고 왔겠지. 여기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나를 계속 기다렸겠지. 내가 보이면 이렇게 꼭 안아주려고. 쓰러지고 토하고 울면서 화장이 이미 다 지워진 얼굴을 P의 가슴팍에 부비며 가만히 안고 있었다.


그때 안겼을 때 내 뺨으로 느껴졌던 옷의 촉감, 냄새, 저 멀리 팔을 힘껏 벌리고 있던 P가 기억난다. 아주 생생하게. 회색의 긴팔 맨투맨을 입고는 무척이나 걱정 어린 얼굴로 서있었다. 안고 있던 그 품에서 P의 사랑이 느껴졌다. 이 사람이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있는지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 탓에 헤어지고 몇 달은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그 주차장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나치다 보기만 해도 그곳에 P가 같은 옷을 입고 서있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데 이렇게 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자니 말이야, 정말 다시는 P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돌이키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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