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도착한 택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by 이마치


근 두 달 전인가, 출근하는데 카톡이 하나 왔다. P님이 보내신 택배가 금일 배송 예정입니다. 동명이인이겠거니 했다. 하루 종일 긴장한 채로 퇴근했고, 집에 와서 보니 진짜 P가 보낸 택배였다. 심호흡 두 번 후후 하고 뜯었는데, 지금 여자친구로 보이는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액자였다. 얘가 이걸 나한테 왜 보낸 거지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났다가, 웃음이 났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만난 지 오늘이 몇백 일째인데 P가 날 못 잊어서 뭔가를 보낸 걸까, 따위의 생각을 했었거든.


발송인을 보니 액자나 포토북을 만들어주는 업체였는데, 예전에 P가 그 업체를 통해 포토북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다. 버리지 못한 그 책을 찾아 확인해보니 맞더라. 아, 나한테 잘못 왔구나 싶었다. 수만 가지 생각을 했다. 버릴까도 했다. 그렇지만 버리면 뭔가 왜 배송이 안 오냐고 P가 업체에 문의하고, 업체는 주소를 확인하고, 내게 연락이 오고... 그런 생각을 하니 한없이 찌질해졌다. 그래서 그냥 P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오랜만이야. 잘 지내? 택배가 왔는데 오빠랑 오빠 여자친구 사진인 거 같아서. P는 건조하게 전화를 받았고, 내가 용건을 꺼내자마자 무척이나 당황했다. P의 첫마디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였다.


요컨대, 나와의 포토북을 만들 때 수신인에 내 이름과 주소를 저장해 두었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문을 했다는 거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P는 내게 그 액자를 버리라고 했다. 나는 괜히 착하고 완벽한 구여친이 되고 싶어서 착불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주소를 문자로 찍어보내라고 했다.


사실 주소를 보내줄 필요도 없었다. 메모장에 저장된 P의 주소를 삭제한 적이 없었다. P에게 종종 치킨을 시켜주곤 했었다. 편의점에서 그 익숙한 주소로 택배를 보내며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 우스워 혼자 킥킥댔다. 그리고 문자를 하나 보냈다. 착불로 잘 보냈고, 그 여자친구랑 행복하게 지내라고. P는 거듭 사과했다. 쿨한 구여친이 된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내 사랑 하나가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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