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치 Sep 02. 2018

나를 망가트리는 것들

남과 비교하며 사는 지옥


 묘각사에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심신안정을 위해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주 오랜만에 해 뜨는 새벽을 멀쩡한 상태로 눈 뜬 채 맞았다. 평소에 비해 말을 3분의 1쯤 한 것 같다. 정신 디톡스에 훌륭한 체험이다. 


 사찰마다 프로그램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찰이 108배를 한다. 묘각사도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108배를 했다. 108개 염주알과 끈을 주고 절 한 번에 하나를 꿰라고 했다. 108개를 다 꿰고 나면 예쁘게 묶어 108염주를 선물해 주신다. 스님이 당부하셨던 것은 한 가지였다. 불자가 아닌 사람도 있고, 이건 극기훈련이 아니니 하다가 힘들면 절 한 번에 염주알 두세 개씩 끼울 것. 억지로 하는 108번 보다 정성을 담은 50번이 더 귀한 거라 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 3명과 함께 갔다. 나는 친척 중에 출가한 스님이 계셔서 불교에 익숙한 편이다. 친구 둘은 천주교 신자이고, 하나는 무교인데 종교적 체험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좀 쉬어가자는 기분으로 템플스테이에 함께했다. 두 명이 내 앞자리에 서서 108배를 시작했다. 나도 차분한 마음으로 동작 하나하나 조심해가며 절을 했다. 30배쯤 했을까 절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친구를 봤다. 50배가 지날 때 한번 더 그 친구를 봤고, 90배쯤에 또 가만히 그 친구를 봤다. 


 세 번째로 친구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조금 슬퍼졌다. 내가 보는 건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의 염주였거든. 나보다 걔가 많이 했는지 내가 걔보다 많이 느린지를 살폈다. 이건 승부욕 같은 귀한 감정이 아니었다. 걔보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안간힘. 쉬려고 간 절에서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면서도 나는 친구와 나를 비교했다. 걔가 나보다 빠른 듯하면 서둘러 두세 개를 끼웠다. 내가 108배를 끝냈을 때 내가 남보다 많이 느려서 다들 날 기다리면 어쩌지, 내가 동작을 잘못하거나 굼떠서 남보다 느린가. 그런 걱정을 내도록 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여기 내 마음속에 지옥이 있었다. 


 어중간하게 친구 둘과 타이밍을 맞춰 끝냈고, 가만히 방석에 앉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을 기다렸다. 마치지 못한 사람들 중 내 친구도 하나 있었다. 종교가 없는 친구였다. 걔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중하게 한알씩 끼웠다. 심지어는 염주알 2개가 불량이었던 듯싶었는데, 가만히 앉아 염주알이 106개인걸 세더니 스님을 불러 2알을 더 달라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어나서 다시 2번 절을 하고 2알을 끼웠다. 나는 좀 슬프면서도 감동했다. 잠들기 전 왜 그렇게 열심히 절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108번을 꼬박 채워야지 혼자 결심했었다고.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이런 사람을 세상은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생각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내가 부끄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또다시 느끼는 스스로가 측은했다. 


 스님께서 부처님 말씀을 여럿 전하셨다. 그중 여러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종을 치고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굳이 죽지 않아도 현생에 얼마나 많은 지옥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지옥들 중 하나를 민낯으로 맞이한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있고 싶어요. 다 나가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