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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Aug 23. 2018

수진, 수진, 수진

흔한 이름에 대한 단상


 초등학교 때부터 한 학년에 수진이는 서너 명 되었다. 김수진, 박수진, 정수진. 그 밖의 많은 수진이들. 나는 한때 김수진과 친해져서 1년 내내 붙어 다닌 적이 있었다. 같은 반에 수진이가 2명이었던 기억도 있다. (나는 작은 수진이었다. 큰 수진이가 다른 애. 큰 00 작은 00 이런 건 자존감을 낮추는 일이야....) 어렸을 때는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개명하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스스로 이름을 짓는 공상을 하며 연아, 수아, 지율 같은 세련된 이름을 동경하곤 했다.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니 이름이 수옥이가 될 뻔했던 건 아냐?'며 웃었다. 나는 빼어날 수秀에 보배 진珍 한자를 쓰는데, 이름을 지어주신 친할아버지가 보배 진과 구슬 옥玉 사이에 크게 고민하셨다는 숨은 이야기.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내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선배가 나에게 '수진'이 처럼 생겼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며칠을 곱씹어 보니, 이름의 느낌이 달라졌다. 흔하되 촌스럽지 않고, 적당히 지적이며 지나치게 여성스럽지 않은 느낌이랄까. 크게 튀지도 않고 묻히지도 않는 적당함이 있다. (물론 내 생각, 그 선배가 생각은 물어본 적 없다)  

  

 지난밤 필라테스 수업을 갔더니 1:6 클래스에 수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역시나 흔한 이름이군. 50분 내내 생각하다가 그녀도 나 같은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을까 궁금했다. 나아가 세상의 많은 수진이들도 나 같은 생각을 할까? 그녀들은(그들은) 자기 이름이 어떤 느낌이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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