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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09. 2019

내가 이걸 왜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전업주부에게 요리란?


 퇴사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레 요리를 한다. 레시피를 보고 얼추 잘 따라 하는 편이라 이것저것 만들곤 하는데, 늘 예상보다 맛있어서 조금 놀란다. 사실 나는 '맛있음'의 범위가 매우 넓은 편이라 웬만한 건 다 맛있다. 어느 식당을 가도 잘 먹는 날 보며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자란 사람이 커서도 미식가가 된다고 했다.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 엄마의 요리 실력을 변명 삼곤 했다. 아, 전업주부인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한다.


 <모두의 주방>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각자의 요리를 하고 나눠 먹는 본격 소셜다이닝 프로그램이라나. 배우 이청아가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요리를 못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음식 투정을 했는데 하루는 엄마가 "나는 내가 이걸 왜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날부터 투정을 일절 안 했다고.


  우리는 전업주부에게 과도한 역량을 요구한다. 요리도, 청소도, 집 꾸미기도, 육아도 잘하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기업에서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알고 기획력도 있으며 코딩도 할 줄 알고 급할 때는 용접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우리 엄마가 꼭 요리를 잘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엄마는 국사학을 전공했고 그림을 잘 그리고, 모든 식물을 잘 키운다. 다른 재능이 이렇게 많은데 원치 않게도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요리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스물여덟에 동갑이었던 아빠와 결혼했다. 그리고 올해, 나는 그 나이가 되었다. 사실 그저께도 저녁밥을 먹다가 찌개가 너무 싱거워, 투정했는데. 이렇게 부채감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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