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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09. 2019

여행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면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늘 떠납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는다. '공항 동정'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있어 옮겨본다.


 '공항 동정'은 매일 공항을 통해 출입국한 사람들의 명단과 출국 목적, 항공편을 적어둔 것이다. 일반인의 해외 출국이 제한되었던 시대라 그런지 '공항 동정'에 등장하는 사람은 고위관료나 정치인, 연예인들이 대부분이다.
(중략)
만약 지금도 신문에 '공항 동정'이라는 꼭지가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나의 출국 목적란에는 '한파로부터의 도피' 정도로 적어야지 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행욕구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내 출국 목적은 무엇일까. 같은 책에서 박준 시인은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대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떠나는' 편이다. 그래서 돌아올 때면 늘 그렇게 서럽다. 치앙마이에서 40일을 체류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뚝뚝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보라면, 포기가 빠르겠다.


 퇴사를 결심하면서 마음속에 굳게 새긴 말이 있다. '삶은 여행이지 준비하는 게 아니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대학생 때 취업을, 직장인일 때 결혼을, 또 출산을, 노후를.. 이렇게 늘 준비만 하면서 살지 않겠다고. 나이가 들어도 항상 여행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흰 종이를 꺼내 가고 싶은 도시를 적어본다. 베를린, 프라하, 하바나, 발레타, 상하이. 그러다 다시 자꾸만 계획을 세운다. 몇 살 전에 이 도시를 꼭 가겠다. 이 도시를 가기 위해 돈을 어떻게 모으겠다. 여행에도 준비가 필요하니까.


 어쩌면 내가 돌아오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현실세계에서 '준비'와 '나'를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늘 떠나지만, 기어코 돌아오고야 말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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