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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11. 2019

회사와 나, 애증의 관계

너무 사랑하는 것도 문제다.

 

 김은진 작가의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을 샀다. 너무 공감되는 구절이 있어 옮긴다.



정작 일할 때는 못 해 먹겠다, 때려치워야지 하며 징징대며 일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내 직업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회사를 다닐 때 가장 많이 한 일은 '사진 찍기'였다. 사진보고가 흔한 회사였다. 행사 대응으로 뭘 붙이거나 매대를 교체하거나 하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두어야 했다. 위로부터의 지시는 늘 '전점 당일 사진보고'따위였다. 언제 보고하라고 할지 모르고, 당일에 열여섯 개나 되는 점포를 다 갈 수 없으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내가 한 모든 일을 찍었다. 퇴사 후 휴대폰에 저장해두었던 진열 관련 사진앨범을 날리는데 순간 용량이 확 늘더라.


 우습게도 퇴사 후 다녀온 치앙마이에서, 후쿠오카에서 편의점을 들어갈 때마다 희한한 매대를 발견하면 무심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미 퇴사한 동기나 팀 선배에게 사진을 전송하며 물었다. 이거 진짜 신박하지 않아? 한번 해봐. 그때마다 답장은 늘 비슷했다. '이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니?'


 입사했을 때 가장 이슈는 젤리였다. 젤리 매대를 모든 점포마다 만들어야 했는데 경영주들이 알아서 할리 만무하니 직접 돌면서 매대를 수정해야 했다. 매주 두세 개씩 젤리 신상품이 날아들었고 도입하느라 진열하느라 진땀 빼던 날들이었다. 매대에 자리를 잡아주고 사진을 찍고는 동기 방에 올려 늘 욕을 그렇게 했다. 회사가 미쳤다고 젤리 너무 많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명동, 종로, 이태원, 홍대 같은 주요 상권에서 약속이 있을 때면 습관처럼 경쟁사 점포를 들어갔다. 우리가 취급하지 않는 젤리들을 사서 먹어보고 신상품도 먹어보고 했다. 그러다 맛있으면 꼭 다음 주에 점포를 가서 경영주들한테 얘기해줬다. 점주님 이거 제가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어요. 믿고 도입하세요.


 열정 넘치는 시절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회사 욕이 절반이었는데 또 누가 물으면 신이 났다. 요즘은 이게 이슈야, 이게 맛있어, 소개하느라 바빴다. 누구는 회사가 돈을 버는 곳일 뿐이라는데, 첫 직장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너무 사랑했던 게 문제였다. 애증의 관계랄까, 회사가 싫으면서도 누구보다 좋아서. 그래서 견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상황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려 애쓰다가 체하고, 어쩌면 포기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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