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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17. 2019

버리는 사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엄마의 습관


  일본에 다녀왔다. 외할머니와 이모들, 엄마, 사촌동생과 함께였다. 둘째 날은 료칸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고타츠에 둘러 앉아 크로와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끝없는 수다를 떨었다. 아침에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크로와상을 18개나 샀다. 먹다 보니 두어 개가 남았고, 외할머니는 남은 빵을 위생백에 다시 꽁꽁 동여맸다. 작은 이모가 그걸 보더니 엄마, 좀 버려. 이제 저녁도 먹을 거고 먹을 거 이렇게 많은데 다른 거 맛있는 거 많이 먹자, 몇번이고 말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잘 묶였는지를 확인했다.


 나와 아빠는 물건을 잘 버리는 쪽이다. 조금만 필요 없다고 느껴지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넣는다. 구석에 박혀 있던 물건을 찾아내면 기뻐하기보다는 이제껏 없어도 불편함 없이 살았으니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며 그저 버렸다. 한편 엄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쪽이다. 정리를 잘하지도 않으면서 아깝다고 물건을 쌓고 쌓아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못내 싫고 질려서 늘 잔소리를 했다. 이거 쓸 거야? 안 쓸 거잖아 엄마. 그냥 좀 버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멀쩡한 건데 왜 버려? 나중에 필요할 때 아쉽잖아. 기어코 다시 어딘가에 구겨 넣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일본에서 잠옷으로 입던 트레이닝 바지를 버렸다. 애초에 버릴 생각으로 낡은 옷을 가져간 거였다. 쓰레기통에 개인 채 넣어진 바지를 보며 작은 이모가 웃었다. 수진이는 물건을 잘 버리는구나. 언니랑 다르네. 언니는 엄마 닮아서 물건을 못 버려. 젊을 때는 안 그러더니 나이 드니까 그러더라.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보고 배운 것들을 생각해본다. 나도 엄마를 보고 배운 것이 있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마흔의 나는 어쩌면 엄마와 똑 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처럼 다시 꺼내보지도 않을 가계부를 이십 년 넘게 쓴다던가. 빨래를 하고 수건을 꼭 삼등분해서 갠다던가. 남동생이, 아빠가, 엄마를 알던 사람들이 미래의 나에게 엄마의 모습을 쉬이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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