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불안함의 이유
K는 집착이 심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길 원했다. 지금 일어났고, 학교를 가는 중이고, 또 누구를 만났고 이제 집에 도착했다는 보고들. 스물셋의 나는 집착은 곧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착이 뭔가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명동의 어느 카페였다. 3층인가에 스크린을 설치해두고 2인용 소파를 20개쯤 놓아둔 곳이었다. 그날은 영화 <어바웃 타임> 상영 날이었고 커피와 맥주를 주문한 채 영화를 봤다. 나른했고 평화로웠다. 세 번째 보는 영화였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테이블 위 내 휴대폰에서 카톡 알람이 울렸다. 친한 남자 동기가 과제를 다했냐고 물었다. K는 물끄러미 그 화면을 보더니 이내 휴대폰을 집어 들고 카톡을 읽었다. 며칠 전 내 공연에 찾아온 친구가 공연을 잘 봤다, 예쁘게 잘 하더라고 보낸 카톡이 있었다. K는 갑자기 화를 내며 카톡 내보내기 기능을 사용해 대화를 자신의 메일 계정으로 전송했다.
그리고는 K는 명동역까지 빠르게 걸었다. 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첫째로 그가 화가 난 포인트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됐다. 둘째로 내 카톡을 본인의 계정으로 동의 없이 보낸 그 무례함에 화가 났다. 셋째로는 왠지 모르게 K가 더 화가 난 것 같아 나는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K와 나는 명동역 플랫폼에 서서 서로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이고 너는 왜 내게 이렇게 무례하냐고. 너는 내가 싫다는데 왜 걔랑 계속 연락을 하냐고.
그 사건은 어찌어찌 잘 마무리되었다. K는 내 눈앞에서 메일을 삭제했고, 나는 K가 싫다면 연락 빈도를 줄이겠다고 했다. K는 아무래도 그 남사친이 날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K를 알기도 전부터 그 친구와 친했고, 매번 같은 전공 강의를 들으며 팀플을 하는 입장이었다. K를 달래려 그 친구와 연락 안 할게, 했다.
나는 K의 집착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K는 영국에서 함께 살던 오래된 여자 친구가 있었고, 한국에 취업을 하면서 본인이 바람을 피워 이별했다. 그 과정은 비록 본인이 가해자였으나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았던 것 같다. 그 까닭에 바로 다음 여자친구인 나를 그토록 구속했다.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내가 금방이라도 벗어날 것처럼. 바람피워본 놈이 또 핀다는 말이 있던데, 나는 K를 만나며 바람피워본 놈이 더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K는 내가 K의 과거를 알게 된 순간부터 버릇처럼 내게 말했다. 나는 바람 절대 안 펴. 한번 해봐서 그게 얼마나 아픈 건지 알아. 절대 안 펴. 그니까 너도 그러지 마. 나 버리지 마. 나는 K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공허하고 불안해졌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알아서. K에게 이별 선고를 한건 나였다. K는 나와 연애하는 내내 단 한 번도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어쩌면 그때 K의 버릇 같던 말들이 100%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지 말라고, 바람 절대 안 필 거라고. 그런 말들.